[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당혹감,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잘못든 길이 하필 고속도로라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이럴 때 운전자를 반겨주는 이정표가 ‘회차로’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유턴(U-Turn) 존이 단비 같은 존재다. 크게 돌아가지 않아도 잘못든 길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 ‘유턴존’은 인생에서도 한 번은 필요한 공간이다.

지난 주말 우연히 본 TV 속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순천 효천고를 졸업하고 2018 2차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74순위로 한화에 입단한 양경민(26)의 얼굴이 TV에 비쳤다. 신인 때 봤으니 6년이 지났는데,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 미소를 짓게 했다. 그런데 양경민이 들고 있는 건 108개의 실밥으로 봉합한 야구공이 아닌 양파. 마운드에서 씩씩하게 공을 던지는 대신, 쉼없이 양파를 썰고 있다.

ENA가 편성한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이라는 프로그램을 반가운 얼굴 덕분에 끝까지 봤다. 뻔한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놀랐다. 창업 기회를 제공하는데, 명망 높은 셰프가 도움의 손길을 주겠다는 얘기다. 요식업을 할 준비가 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출연자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가는 일종의 생존경쟁. 여기에 한 가지 ‘킥’은 ‘갱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출연자들의 사연은 절절하다. 그러나 타이틀 롤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여러분의 과거는 관심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왕 새출발할 기회를 주기로 결정한 만큼 과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현재의 가능성만 보겠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인생의 ‘유턴존’을 예능프로그램 형식을 빌려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양파를 세로로 썰어야 하는지, 3㎜라는 두께가 시각적으로 어느정도인지를 물어본 뒤 하염없이 양파를 손질하고 써는 양경민의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투영됐다. 일어설 기회가 눈앞에 있으니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결의도 엿보였다. 양경민뿐만 아니라 화면 속 참가자 대부분이 절박함과 결연함으로 미션에 임했다.

‘인생의 유턴존’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특히 양경민처럼,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운동선수로 보낸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제도다. 학생선수가 반드시 직업선수가 될 수 없어서다. 프로 입단에 실패한 학생선수들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피트니스 강사나 요식업, 취업교육을 통한 기술자 등이 이들 앞에 놓인 몇 안되는 선택지다.

공부대신 운동을 선택한 학생선수들에게 유턴존을 만들어주는 제도는 그래서 해당 종목에서 마련해줘야 한다.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던 학생선수의 꿈이 좌절됐을 때 스포츠미디어 종사자나 데이터애널리스트, 운동·심리치료사 등으로 뻗어갈 수 있는 길을 야구계에서 만들어주자는 얘기다. 학생선수는 종목 이해도가 높으므로, 이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직업군이 다양해지면 산업화도 가속할 수 있다.

저변확대는, 단순히 ‘야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에 방점을 찍으면 안된다. ‘야구하는 사람’이 아닌 ‘야구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들이 다양한 직군을 형성하는 것이 기초여야 한다. 야구계에 ‘요식업계의 백종원’이 필요한 이유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