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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한국의 지방체육 예산은 어림잡아 1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17개 시·도체육회(광역 지방자치단체)와 228개 시·군·구체육회(기초 지방자치단체)가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고 균형잡힌 지방체육 생태계를 꾸리는 데 드는 비용인 셈이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체육의 가치와 영역이 확장되면서 체육에 소요되는 예산은 더욱 늘 수밖에 없는 게 시대의 트렌드다. 특히 균형잡힌 체육 생태계 구축을 위한 지방체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난 연말 지방자치단체장의 지방체육회장 겸직 금지를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통과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체육 현장의 실태를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정책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정치인의 단견과 체육 관료의 무능함, 그리고 대한체육회의 무책임이 빚은 참극”이라며 법 개정 후폭풍에 우려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체육진흥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국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기타 공공기관인 대한체육회와 달리 지방체육회는 임의단체에 불과하다. 지방체육회에 대한 지원이 법적으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현재 17개 시·도체육회와 228개의 시·군·구체육회는 예산의 90% 이상을 지방자체단체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그나마 대한체육회와 지부·지회 관계를 맺어 지자체가 도와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미약하나마 확보하는 데서 활로를 찾았다. 지방체육 예산을 지탱한 근거는 국민체육진흥법 제 18조 ③항, 달랑 이 한 줄밖에 없다. “지자체는 통합체육회와 장애인체육회 지부·지회에 예산의 범위에서 보조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 하나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게 한국 지방체육의 서글픈 운명이다.
지자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할 때는 임의조항도 지원 근거가 되겠지만 겸직 금지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지자체장과 경쟁적인 인사가 체육회장에 올랐을 경우 지자체가 운영비를 보조하지 않거나 깎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또 체육단체가 주관하는 대회에 지자체가 관례적으로 지급하던 사업비도 줄일 수 있다. 운영비 보조는 법에 명기라도 돼있지만 사업비에 관련한 규정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시장기, 도지사배와 같은 대회는 사라질 수도 있다. 체육시설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대부분의 체육시설은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돼있다. 지금까지는 체육단체가 이 시설을 큰 어려움없이 지속적으로 사용해왔다. 만일 지자체장과 지방체육회장 사이가 틀어지면 시설 사용을 놓고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방체육도 이제 제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 대한체육회의 위계질서속에 편입돼 거수기 노릇을 하던 때는 지났다. 지방마다 색깔있는 체육정책을 펼치며 자신들의 환경에 맞는 체육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새로운 체육 패러다임이 요구하는 지방체육의 지향점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선 예산과 시설의 지원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법정 법인화가 가장 절실한 선결과제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