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웅장해진다. 얌전해 보이는 도심의 차량들 사이에서 남다른 체급을 자랑한다. 각진 박스형 외모는 강인하면서도 우아함을 더한다.
바로 동급 대형 SUV를 압도하는 지프의 그랜드 체로키 L(롱바디) 모델이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전장은 카니발 정도로 보이는데 제원을 확인해보니 살짝 더 길다. 그랜드 체로키 L의 전장은 5220mm고 카니발은 5155mm다.
전폭은 체로키 써밋 리저브가 1985mm이고 카니발은 1995mm다. 그런데 각진 스타일 때문인지 체로키의 전폭이 더 넓어보이는 착시를 부른다.
지프의 대표적 프리미엄 SUV인 그랜드 체로키 L은 한눈에 봐도 대륙을 달리는 미국차 같다. 이름에 붙어있는 체로키는 미국 중남부 지역, 특히 오클라호마에 거주했던 아메리카 원주민 민족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여느 원주민 부족처럼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그랜드 체로키는 누적 판매 700만대 이상을 자랑하는 스테디셀러다. 이번에 시승한 써밋 리저브는 최상위 트림으로 6인승 모델이다.
시승을 위해 운전석 문을 오픈하니, 전동 사이드스텝(보조발판)이 빠져나오며 탑승자를 맞이한다. 그런데 사이드스텝의 움직임이 매우 민첩하다. 내리고 탈때 차량에 바짝 붙으면 사이드스텝에 정강이를 맞을 수 있으니 유의하자.
운전석에 앉아보니, 마치 단단한 외골격에 둘러싸인 듯 안정감이 든다. 행여나 그런 일이 생기면 안되겠지만, 도로에서 사고 나도 내 몸 하나는 건사하겠다는 안심이 뇌리를 스친다.
이어 다부진 외모와는 반전 매력같은 고급스런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눈을 편하게 하는 프리미엄 팔레르모 가죽 시트가 몸도 편하게 감싸준다. 트림 곳곳에 리얼 우드의 수공예 소재 역시 고급미를 더한다.
출발에 앞서 스마트폰을 차량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블루투스로 연결해 최신 팝송을 틀었다. 19개의 매킨토시 스피커가 내뿜는 사운드가 강력하면서도 섬세하다.
우퍼의 묵직한 울림은 고막에 앞서 가슴부터 울린다.
차량정체가 극심한 금요일 퇴근 시간, 서울 강남 역삼동에서 반포대교를 넘어 혜화동까지 이동했다. 1시간 34분 동안 16.5km를 주행했다. 가다서다를 반복했지만, 도심 공인연비 6.7km/ℓ와 유사한 결과치가 나왔다.
승차감은 물렁하다는 미국차의 선입견과 달리 독일차처럼 단단하다. 그래서 2열과 3열에 앉아도 꿀렁거림이 적다. 특히 2열은 세단처럼 안락함을 선사하며 막히는 도심의 지루함을 덜어냈다. 1열은 파워 마사지 시트로 피로를 풀 수도 있다.
꽉막힌 도심이지만, 차선 변경을 할때마다 덩치에 비해 활동성이 매우 높다는걸 알 수 있었다. 3.6ℓ 6기통 가솔린엔진(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35.1㎏·m)은 공차중량 2325kg을 잊기에 충분했다.
디지털 룸미러는 특이하다. 거울을 통해 차량 뒤를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다. 후방카메라와 연결된 화면을 보여준다.
해상도 높은 TV화면처럼 뒤 차량 탑승자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인다. 다만 디지털 룸미러는 햇빛이나 주변 조명에 빛 반사가 있다. TV나 노트북 모니터 화면이 주변 광선에 반사되는 것처럼.
일요일 오후, 서울 시내를 떠나 전라북도 전주 인근까지 왕복했다. 차는 가속페달을 밟는 대로 차는 쭉쭉 치고 나갔다.
총 5시간 40분 동안 405km를 주행했다. 계기판에 연비는 8.8km/ℓ가 찍혔다. 그랜드 체로키 L의 표준연비는 7.7 /ℓ이고 고속연비는 9.4km/ℓ다.
고속도로에서 운전보조 기능은 유용했다. 그랜드체로키 L의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하니 운전자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차량이 스스로 앞차와의 거리를 조정하며 운행했다.
자율주행 레벨2 등급의 드라이빙 어시스트도 차량이 도로를 탈선하지 않게 돕는다. 또한 졸음감지 시스템 및 보행자/자전거 감지해 긴급 제동하는 안전보조 장치도 기본 사양이다.
운전모드로는 락(바위),샌드/머드,스노우,오토,스포츠 등을 선택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차체 높이도 바꿔 온오프로드에서 주행 성능을 향상가능하다.
‘2023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은 오버랜드(Overland), 써밋 리저브(Summit Reserve) 두 가지 트림으로 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