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트로피 들고 포즈 취하는 유해란 (2)
유해란이 11일 오라CC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최종라운드가 악천후로 취소된 뒤 우승을 확정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 KLPGA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제주에서 치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투어 개막전에서 상하반기 모두 신인이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슈퍼루키’ 돌풍을 견인한 조아연(19·볼빅)은 정규투어 시드권을 획득한 뒤 지난 4월 스카이힐 제주에서 열린 국내 개막전 롯데 렌터카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따냈는데 이보다 더 한 괴물이 등장했다.

아직 여고생(신갈고) 신분인 유해란(18·SK네트웍스)이 11일 태풍 레끼마의 영향으로 최종라운드가 취소된 제6회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9일부터 오라컨트리클럽(파72·6666야드)에서 시작한 이번 대회에서 2라운드 합산 10언더파 134타로 8언더파 136타를 적은 김지영2(23·올포유)를 2타 차로 따돌리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5월 정회원에 입회했고 정규투어 시드권이 없어 초청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을 따냈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24·하이트진로), 골프 여제 박인비(31·KB금융그룹) KLPGA 랭킹 1위 최혜진(20·롯데)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무명 반란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유해란 15번홀 세컨드샷 시도하고 있다
드라이버 비거리 250m를 자랑하는 장타자이지만 유해란은 ‘아이언을 잘 치는 선수’로 불러달라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 KLPGA

유해란은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골프 여자 단체전 은메달리스트다. 중학교 시절인 2014년 KLPGA 협회장기 우승으로 일찌감치 준회원 자격을 따냈고, 정회원 입회 후 출전한 드림투어에서 역대 5번째로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한 될 성 부른 떡잎이다. 특히 지난달 25일과 지난 1일 드림투어에서 2주 연속 우승한 뒤 삼다수 마스터스 패권까지 거머쥐어 3주 연속 우승이라는 진기록도 수립했다. 올시즌 KLPGA 정규투어에서 초청선수가 우승한 것도 유해란이 처음이다.

지난 10일 2라운드에서 단독 선두에 올라선 직후 “우승 욕심은 없다. 선배들이 많이 출전했기 때문에 플레이 하나 하나 지켜보면서 배우려는 마음이 더 크다”며 자세를 낮췄다. 그는 “정규투어 시드권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드림투어에서 조금 더 경험을 쌓은 뒤 내년부터 정규투어 신인왕을 목표로 당당히 입성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덜컥 우승을 차지했으니 정규투어 시드권자로 신분이 상승됐다. 지난 3월 만18세가 돼 프로로 전향했고, 4월에 참가한 점프투어에서 상위 14위 이내에 이름을 올려 5월 정회원 자격을 얻었다. 프로로 전향해 첫 대회에 나간지 5개월도 채 안돼 정규투어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으니 역대급 고속 승진이다. 유해란은 “다음주 드림투어 참가 여부는 부모님과 상의해봐야 할 것 같다. 연속으로 대회에 참가하다보니 한 주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정규투어 입성을 선언했다. 그는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부터 참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우승 인터뷰하는 유해란 (2)
유쾌한 입담으로 기자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있는 유해란. 사진제공 | KLPGA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출전한 아마추어 대회에서 5승을 따냈는데 이 가운데 4승을 오라CC에서 따냈다. 그래서 ‘오라 공주’로 불리기도 한다. 유해란은 “그린이 나와 잘 맞는다. 이 골프장에서 경험을 많이해서인지 퍼팅 라이 읽기가 수월하다”며 웃었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도 힘들어한 ‘한라산 브레이크’를 이미 정복했다는 의미다. 유해란은 “우승은 하늘이 점찍어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며 대회에 임했다. 평소에도 옆으로 빠질 공도 나무를 맞고 튕겨 다시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 등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회 취소는 생각도 못했다. 지연출발을 각오하고 평소처럼 몸도 풀고 루틴도 유지했는데, 경기가 취소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우승했다는 것도 이 때 알았다”고 설명했다.

2016년부터 매년 한 차례 가량 정규투어를 치렀지만, 프로 입문 후 출전한 첫 정규투어라 보완할 점도 느꼈다. 그는 “장타자로 보시겠지만 ‘아이언을 정확하게 잘 치는 유해란’으로 봐주셨으면 한다”고 자기 소개를 한 뒤 “성격이 낙천적이고 차분해 실수를 해도 빨리 잊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화를 푼다. 덩치가 크다보니 느리다는 말을 듣는데, 정규투어는 모든 것이 빠르기 때문에 빨리 걷는 훈련을 해야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평균 250~260m 가량 날아가는데다 탄도까지 높아 박성현(26·솔레어)과 김아림(24·SBI저축은행)의 대항마로 꼽히기도 한다.

우승 트로피에 입맞추는 유해란 (2)
프로전향 5개월 만에 KPGA 정규투어 우승을 따낸 유해란이 우승재킷을 입고 트로피에 입맞추고 있다. 사진제공 | KLPGA

유해란은 “최근에 기대한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 기세를 유지하면서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정회원 입회 후 얼마 안됐는데 우승해 영광이다.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단기적인 목표를 잡는 스타일이라 내년 신인왕을 목표로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