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롯데 새 사령탑에 부임하는 허문회 키움 수석코치. 고척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포토] 롯데, 6연패
지난 9월4일 삼성전에서 더그아웃 롯데 선수들 모습. 사직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투명한 프로세스’라는 정갈한 표현으로 새 사령탑 선임 의지를 보였지만 여러 의문 부호가 따랐다. 여기에 일찌감치 정보가 유출됐고 구단은 어수선한 대처로 아쉬움만 남겼다.

올 시즌 KBO리그 최하위 수모를 겪은 롯데는 팀 재건을 두고 초미의 관심사였던 새 1군 사령탑에 키움 허문회 수석코치를 앉혔다. 롯데 구단은 허 신임 감독과 계약 기간 3년, 총액 10억 5000만 원(계약금 3억 원·연봉 2억 50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27일 보도자료로 밝혔다. 그러면서 ‘시즌 종료 후 감독 선임 프로세스에 따라 국내·외 감독 후보와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며 ‘선수단과 소통 능력, 데이터에 기반한 경기 운영 능력, 지도자로 성과 및 선수단의 신임도 등 다방면에 걸쳐 평가를 시행했고 허 감독이 새 비전을 실천해나갈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특히 롯데는 허 감독 선임 발표와 함께 일찌감치 성민규 단장을 중심으로 외친 ‘감독 선임 프로세스’를 따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선임 과정은 타 구단 사례와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9월19일 ‘2020시즌을 시작으로 팀과 함께할 감독 선임 과정’을 주제로한 보도자료를 냈을 때만 해도 참신했다. 롯데는 플랜A였던 외국인 후보자 3인(제리 로이스터, 래리 서튼, 스캇 쿨바)을 전격 공개했다. 그러면서 성 단장이 미국으로 날아가 직접 면접을 하기로 했다면서 일정도 공유했다. 다만 플랜B 국내 지도자 후보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반기 임시 지휘봉을 맡은 공필성 감독 대행을 포함해 몇몇 후보자가 있다고만 했다. 대신 ‘향후 감독 선임 과정에 관해서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은 하겠다’는 게 구단 입장이었다. 그러나 허 감독 발표까지 롯데는 외국인 후보자 공개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관련 보도자료나 언급을 하지 않았다. 플랜A였던 외국인 후보자와 협상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면서 더욱더 그랬다. 10년 전 롯데 야구 부흥기를 이끈 로이스터 전 감독은 부산 지역 팬이 가장 그리워하는 인물이나 오랜 현장 공백으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실질적으로 서튼, 쿨바 두 지도자를 두고 저울질했는데 서튼은 퓨처스(2군) 지휘봉을 맡겼다. 쿨바는 롯데가 책정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대우를 원했다. 롯데는 쿨바 측에 ‘조건 데드라인’을 붙인 채 기다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외국인 지도자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롯데는 이르게 국내 지도자로 눈을 돌렸다. 프로세스는 일을 처리하는 과정 또는 순서를 일컬어 표현하는 말이다. 롯데가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투명함과 선진적인 프로세스를 강조한 만큼 국내 지도자 선임 과정 역시 남다른 행보를 보이리라고 기대한 이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다수 이해관계가 얽힌 국내 프로스포츠 지도자 선임의 굴레를 벗어나진 못했다. 외국인과 다르게 국내 지도자에게 접촉하면 일련의 과정이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허 감독만 하더라도 이미 정규시즌 말미부터 롯데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포스트시즌 기간 키움이 오름세를 타면서 한국시리즈(KS) 무대까지 밟았는데 준플레이오프께 롯데와 키움 측이 또다시 만났다. 키움이 중대한 승부를 앞두고 있는 만큼 허 감독 영입을 기정사실로 하면서도 팀 분위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자는 데 견해를 모았다. 그런데 허 감독의 롯데행은 야구인과 미디어, 심지어 KS를 치르는 선수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퍼져있었다. 롯데와 키움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뒤숭숭한 분위기가 발생했다. 실제 KS 기간 한 야구인이 키움 더그아웃에서 장정석 감독 옆에 있는 허 감독을 향해 “롯데 감독으로 가지 않느냐”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순간 ‘민망한 상황’이 됐다. 결국 허 감독의 롯데행은 26일 KS 종료 직후 세리머니가 한창일 때 언론 보도로 터져나왔다. 다급해진 롯데는 사태 수습에 바빴고 하루가 지나 발표했다.

최근 스포츠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산업군은 정보유통채널이 워낙 다양해져 각종 소문이나 현상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오랜 구식 문화가 잔존했던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모른다’식 대응보다 사실에 따라 진정으로 소통하고 양해를 구하는 추세다. 프로 세계에서 같은 소속팀 동료나 코치가 좋은 대우로 영전을 하는 것에 최근 세대는 충분히 손뼉 쳐주고 이해해준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물음표만 남긴 건 롯데가 지향한 ‘투명한 프로세스’에도 어긋나고 키움에도 부작용이 됐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저 ‘국내 문화’라고만 여기기엔 이제 감추는 시대는 끝났고 그라운드 안팎에서 잡음만 일어날 뿐이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