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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태권 남매 다비드 하브릴로프(왼쪽)와 예바 하브릴로바가 21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2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남녀 페어 부문에 출전해 태극5장, 금강을 선보이고 있다. 제공 | 세계태권도연맹

[스포츠서울 | 고양=김용일기자] “우크라이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도 불굴의 의지로 한국 땅을 밟은 우크라이나 ‘태권 남매’ 다비드 하브릴로프(13·남), 예바 하브릴로바(12·여)는 자신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 및 대회 관계자 앞에서 의젓하게 말했다.

다비드와 예바는 2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막한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 남녀 페어 부문 준결승에서 태극5장과 금강을 선보이며 6.72점을 받아 13개 팀 중 7위를 기록, 상위 8개 팀에 주어지는 결선 진출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들은 22일 결선을 치른다. 예바는 같은 날 유소년 여자 개인전, 다비드는 23일 유소년 남자 개인전에도 각각 출전할 예정이다. 둘은 첫날 경기를 마친 뒤 이번 대회 매니저(감독)로 참가한 아버지 루슬란 하브릴로프(42)와 얼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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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 남매 예바 하브릴로바(왼쪽), 다비드 하브릴로프(가운데)가 이번 대회 감독으로 나선 아버지 루슬란 하브릴로프에게 경기 후 인사하고 있다. 제공 | 세계태권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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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장에 당도한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다. 자국 품새선수권에서 남녀 페어는 물론 개인전까지 휩쓴 남매는 15년 만에 태권 종주국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품새선수권 출전을 고대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전쟁이 발발하면서 위기에 놓였다. 루슬란 감독은 “애초 지난 2월26일 크로아티아의 한 대회에 참가하려고 했는데, (다른 가족이 있는) 키이우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지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24일이다.

태권 남매 가족은 우크라이나 동부 폴타바에 거주하고 있다. 루슬란 감독은 “100㎞ 떨어진 오흐티르카가 러시아 폭격으로 초토화가 됐다. 우리는 집에 남기로 했고 운영하던 태권도장을 난민 수용소로 사용했다”며 “4월 한국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물거품이 됐다고 봤다”고 돌아봤다. 다비드도 “아버지를 도와서 난민이 편하게 지내도록 도장 내 매트리스를 제공하고 청소를 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그저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남매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지도한 코치가 800㎞ 떨어진 남부 오데사에 발이 묶였으나 수련을 이어갔다. 예바는 “하루 2시간씩 원격을 통해 코치 의견을 들으면서 훈련했다”고 밝혔다. 남매의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세계태권도연맹(WT)과 대회 조직위원회가 앞장 서서 우크라이나의 대회 참가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전쟁으로 선수 등록을 하진 못했으나 초청 선수 자격으로 이들의 참가를 허락했고, 항공료와 숙박비를 지원했다. 또 육로를 통해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입국하는 길을 열어줬다. 루슬란 감독은 “함께 훈련한 다른 선수들은 피난길에 올랐다. 우크라이나 대표 선수는 누구나 국제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를 도와준 WT, 조직위, 대사관 등에 감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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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바가 자국의 전쟁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언급한 민화. 제공 | 세계태권도연맹

태권 남매의 어머니와 막내 동생은 여전히 폴타바에 남아 난민을 돕고 있다. 오데사에 있는 코치도 징집령으로 한국에 함께 오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더 간절한 마음으로 이번 대회에 나선다.

예바는 최근 자국에서 화제가 되는 ‘민화’를 언급했다. 큰 새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그림으로, 개구리가 새 주둥이에 물려 발버둥을 치다가 살아남으려고 발로 새의 목을 잡아 챈다. 예바는 “이 개구리가 살아남은 것처럼 우크라이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빠인 다비드도 “(대회 출전으로) 우크라이나인에게 귀감이 되고, 우리 민족이 강하고 용맹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