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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산성’ 사진 | 지엔씨21
[스포츠서울 | 황철훈기자] 시간은 강물처럼 흐른다. 한번 흘러간 강물을 되돌릴 수 없듯 시간이 그렇다. 다만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그 향기를 느껴볼 수는 있다. 이른바 ‘유적지 탐방 여행’이다.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던 백제시대에서부터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2000년의 장구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전라북도 익산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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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근대역사관 사진 | 지엔씨21

◇익산의 역동적인 역사를 마주하는 ‘익산근대역사관’

익산근대역사관은 1900년대 이후 익산의 생생한 역사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독립운동가 삼산 김병수 선생이 1922년 개원한 삼산의원을 복원한 건물로 아치형의 포치, 코니스 장식 등 근대 초기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945년 해방 뒤에는 한국무진회사, 한국흥업은행, 국민은행으로 사용되었으며 역사적 의미와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6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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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근대역사관 전시실 사진 | 지엔씨21

근대역사관 입구 왼편에는 1900년대 호남의 의병 활동부터 이리역이 열리고 익산에 원광대가 들어오기까지 익산의 생생한 역사가 기록돼있다. 1912년 이리역 개통에서부터 1919년 4.4 만세운동, 1927년 신간회 운동,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까지 익산의 역동적인 역사의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다.

역사관 안에는 옛 삼산의원 당시 사용했던 천장 마감부재를 비롯해 내부 벽제와 당시 사용된 벽돌도 볼 수 있다. 녹슬고 벗겨진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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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산성’ 사진 | 지엔씨21

◇2000년 역사의 고도(古都), 백제의 발자취 ‘미륵산성’

미륵산 자락에 자리한 미륵산성은 삼한시대에 축조된 석축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1822m에 이르며 10개소의 치(雉)와 동문지·남문지·옹성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 따르면 고조선 준왕(準王)이 쌓았다 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불린다. 일명 ‘용화산성’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미륵산의 옛 이름이 용화산이었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성문에는 방어에 유리하도록 작은 성을 따로 쌓았고 성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익산토성과 도토성에서 출토된 형태와 동일한 ‘금마저성(金馬渚城)’과 ‘금마군범요점(金馬郡凡窯店)’이라고 쓰인 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미륵산성의 축조 시기를 8세기 중·후반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삼국시대(백제) 유물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미 백제 때 산성이 축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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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대나무숲 사진 | 지엔씨21

◇푸른 대숲이 바다처럼 펼쳐진 구룡마을 ‘대나무숲’

구룡마을 대나무 숲은 한강 이남 최대의 대나무 군락지로 면적이 5만㎡에 달한다. 주요 수종은 왕대로 대나무인 오죽 또는 분죽이라 부르는 솜대가 일부 자라고 있다. 빼곡하게 들어선 대나무 숲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아기자기 이어진다. 푹신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숲을 깨우면 깜짝 놀란 댓잎이 부대끼며 폭포 소리를 낸다. 푸른 대숲 길을 걷노라면 대나무의 푸른 생동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곳은 우리나라 대나무의 주요 수종인 왕대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 특히 다른 지역의 대나무 숲과 달리 마을 한가운데에 크게 자리하고 있어 경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때 이곳은 ‘생금밭’으로 불렸다. 대나무가 이 지역의 중요한 소득자원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든 죽제품은 우리나라 3대 오일장인 강경 오일장을 통해 인근 지방뿐만 아니라 충청도, 경기도 지방까지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였다.

구룡마을 대나무 숲의 또 하나의 매력은 반딧불이다. 6~8월 여름밤이 되면 반딧불이 연출하는 화려한 군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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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포레스트’ 사진 | 지엔씨21

◇색다른 즐거움이 있는 이색공간 ‘왕궁 포레스트’

왕궁 포레스트는 마치 동남아를 여행하는 듯한 색다른 경험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아열대 식물원을 비롯해 갤러리 카페, 힐링 족욕, 숲 놀이터까지 다양한 휴식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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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포레스트 사진 | 지엔씨21

왕궁 포레스트의 중심 시설은 100여 종의 아열대 식물을 만날 수 있는 아열대 식물원이다. 사계절 다른 모습을 가진 상록활엽수와 야자나무 등 100여 종의 식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됐다. 곳곳에 배치된 포토존과 미니 폭포, 분수 등의 친수 공간, 바람개비길 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식물원 바로 옆에는 50석 규모의 족욕 시설이 마련돼 있어, 편안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왕궁저수지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왕궁 포레스트의 모든 공간은 ‘쉼’을 위해 만들어졌다. ‘공간쉼표’ 1층은 ‘숲멍’과 ‘물멍’을 즐기는 공간으로, 2층은 전시회 등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사용된다. 인조 잔디가 깔린 공간쉼표 건물의 옥상은 사진 명소다. 왕궁저수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공간쉼표 뒤쪽으로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숲 놀이터가, 앞쪽에는 왕궁포레스트 캐릭터 조형물과 함께 핑크뮬리 정원이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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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진 | 지엔씨21

◇백제의 신비를 간직한 ‘미륵사지’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한 미륵사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30대 무왕(600~641년)에 의해 창건했고 17세기경에 폐사됐다. ‘삼국유사’에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무왕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 왕비의 부탁으로 연못을 메우고 세 곳에 탑과 금당, 회랑을 세웠다고 한다.

본래 미륵사에는 3기의 탑이 있었다. 중원에는 목탑,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이 있었다. 동탑은 발굴 당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석탑의 석재들이 유실돼 새로 지었다. 중원에는 양쪽 석탑보다 훨씬 규모가 큰 목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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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전경 사진 | 지엔씨21

그나마 원형을 일부라도 보전하고 있는 것은 서탑이다. 서탑은 1915년 일본인들이 긴급 수리해 탑의 동쪽 부분은 온전하게 남아있었지만, 서쪽 부분을 시멘트로 덮어 버리는 바람에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현재의 모습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1년 해체를 시작해 2019년까지 19년간 보수·복원을 진행한 결과물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최대(最大) 석탑으로 부재 1627개를 짜 맞춰 새롭게 완성했다. 높이는 14.5m, 폭은 12.5m, 무게는 약 1,830t이다.

미륵사지는 1980년에서부터 1995년까지 15년간 발굴이 진행돼 막새기와류와 기와의 등에 문자를 새긴 명문와, 토기·자기류 등 2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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