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동영기자] “난 뛰어난 선수가 아니다.”

한화 이태양(33)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KBO리그에서도 특급 선수만 할 수 있다는 FA 계약을 하고도 이런 말을 한다. 덕분에 꽤 ‘저평가’를 받는 선수다. 우승팀 선발로 뛴 선수임에도 말이다. 진작 선발로 썼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태양은 16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리그 정규시즌 NC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4피안타 무사사구 1탈삼진 1실점의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됐다.

이날 한화는 4-3의 신승을 거뒀다. 1-1로 맞선 6회초 이진영이 적시타를 치며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고, 8회 장진혁, 9회 닉 윌리엄스의 적시타가 터지며 4-1로 앞섰다.

마운드에서는 이태양 뒤에 주현상-김범수-장시환이 1이닝 무실점씩 작성했다. 4-1로 앞선 9회말 마무리 박상원이 1이닝 2실점으로 주춤했지만, 그래도 팀 승리를 지켰다. 데뷔 첫 시즌 10세이브 달성이다.

이태양의 호투가 없었다면 팀 승리도 없다. 사실 등판 자체가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올시즌 주로 불펜에서 활약했고, 선발로 두 차례 나선 것이 전부. 문제는 없었다. 깔끔한 피칭을 선보였다. 결과도 승리다.

선발승은 지난해 9월24일 문학 두산전 이후 326일 만이다. 또한 지난 2017년 6월18일 수원 KT전 이후 2250일 만에 한화 유니폼을 입고 선발승을 품었다.

가뭄에 단비 그 자체다. 시즌 내내 토종 선발 쪽에서 애를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차 문동주가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을 뿐, 다른 쪽은 고민 그 자체다. 한승혁도 자리를 잡지 못했고, 베테랑 장민재도 부진 끝에 1군에서 빠졌다.

이태양을 투입한 것은 ‘고육지책’에 가까웠다. 그만큼 낼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태양은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힘을 보였다. 꼭 필요할 때 ‘히어로’가 되어 등장한 셈이다.

짚을 점이 있다. 이태양의 선발 호투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산 389경기 가운데 103경기가 선발이다. 26.5% 비율이다. 경험이라면 문제가 전혀 없다.

올시즌 거의 불펜으로만 뛰기는 했다. 경기 전까지 40경기에 나섰고, 선발은 딱 2경기. 2이닝 무실점과 3.2이닝 무실점으로 자기 몫을 했다.

또 있다. 지난해 SSG에서 선발로 뛰었다는 점이다. 시즌 첫 등판인 4월7일 수원 KT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선발승을 따냈다.

이후 잔여 4월 경기는 불펜으로 나서다 5월부터 8월까지 아예 선발로 고정됐다. 선발투수들이 줄부상을 당하면서 이태양에게 기회가 갔다.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웠지만, 이태양은 자기 몫을 톡톡히 했다.

5~8월 15경기에 출전해 81이닝을 소화하며 5승 3패, 평균자책점 4.00을 만들었다. 퀄리티스타트(QS) 8회에 퀄리티스타트 플러스(QS+) 4회다.

지난해 SSG는 개막 10연승을 달리는 등 정규시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달성했다.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하며 통합우승을 일궜다. 이태양이 큰 힘이 됐음을 불문가지다. 시즌 30경기 112이닝, 8승 3패 1홀드, 평균자책점 3.62를 만들었다.

시즌 후 FA가 됐고, 지난해 11월 한화와 4년 총액 25억원에 계약하며 친정으로 돌아왔다. 계약금 8억원에 연봉 총액 17억원. 옵션 없이 꽉 채웠다. 2020년 6월 트레이드로 떠난 후 2년 5개월 만에 복귀했다.

불펜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41경기 60.2이닝, 2승 2홀드, 평균자책점 2.37을 찍고 있다. ‘모범 FA’라 하기 부족함이 없다. 정작 이태양은 “나는 대단한 투수가 아니다”고 손사래를 친다.

팀이 먼저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팀이 원하는 그 역할을 한다. 가치 증명은 이미 끝난 선수다. 오랜만에 선발로 나서도 문제는 없었다. 통합우승을 달성한 팀에서 당당히 선발로 활약했던 투수라는 점을 잠시 잊고 있었다. raining9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