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집시의 삶, 내면의 한(恨)…정의는 ‘Z(조로)’로 통한다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영국 런던에서 대흥행을 이끈 뮤지컬 ‘조로’가 ‘조로: 액터뮤지션’으로 재탄생해 한국에 상륙했다. 오리지널 연출진들은 국내 배우들의 실력과 매력을 인정하고 한국만의 색깔을 입혀 새로운 무대를 꾸몄다. 막이 오른 후 ‘중소극장이 좁다고 느껴진 작품은 처음’이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조로: 액터뮤지션’은 말 그대로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며 춤추고 연기한다. 지난 6월까지 유니버셜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마친 ‘그레이트 코멧’과 달리 전문 세션을 투입하지 않고, 오로지 배우들이 전 무대를 책임진다.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세계적인 집시음악 그룹 ‘집시 킹스(Gipsy Kings)’의 음악을 한층 더 즐길 수 있다.

공연 중 무대 설치까지 배우들의 몫이다. 자연스럽게 연기해 이들이 무대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전문가 못지않은 변형 예술과 함께 완벽한 공연을 펼쳐 매회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는다.

배우들의 노래와 춤사위는 1805년 스페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안내한다. 시간여행을 떠난 관객들은 자유분방한 집시들과 어우러져 어깨춤을 추며 흥을 맞춘다. 배우들도 중간중간 관객들에게 호응을 유도하며 중소극장만의 묘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커튼콜 땐 관객석으로 뛰어 내려와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호응이 뜨뜻미지근하면 배우들이 퇴장을 안 한다. 관객들이 충분히 즐길 때까지 무대에 남아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 ‘쥐네즈’ Ven aquí! 런던 오리지널 팀보다 ‘프로’ 무대 선보인다

안무가 크레시다 카레는 “한국 배우들이 영국 배우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며 런던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대다수 뮤지컬 여주인공이 ‘빌런’으로 나온다. 이 작품에서는 정반대다. ‘이네즈(홍륜희 분)’와 ‘루이자(전나영·서채이 분)’는 또 다른 ‘영웅’의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매혹적인 아우라를 뽐내는 ‘이네즈’는 등장마다 시선을 강탈해 관객들을 홀린다. 쥐롤라(유튜브 ‘뮤지컬스타’ 이호광)가 탐낼만한 장면을 여러 번 연출한다. 캐스터네츠, 부채 등을 이용한 애절하고도 격렬한 춤은 입 벌리고 관람하다 침까지 흘릴 정도라니, 공연장을 찾아 직접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인공 ‘조로·디에고(최민우·MJ·민규 분)’의 불타오르는 정의감은 꽤 발랄함이라는 마스크로 가려 두 인물을 동시에 보는 듯하다. 역시 ‘가면계의 히어로’ 원조답게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멋있는 건 혼자 다 한다. 이래서 짐 캐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마스크’까지 탄생했나 보다.

어릴 적부터 쌓여온 상처를 탐욕으로 채운 ‘라몬(김승대·최세용 분)’의 ‘빨래판 복근’의 절규도 명장면 중에 하나로 꼽힌다. 이 장면이 시작되면 관객석 여기저기서 숨죽여 환호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그만의 넘버가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원작부터 없었기에 큰 불만은 없다는 반응이다. 대신 신들린 연기로 공연 전체를 압도한다.

다만 저렴한 대학로의 티켓값에 익숙한 ‘뮤덕(뮤지컬 덕후)’들의 관심이 아쉽다. 제작사도 VIP석 9만9000원, R석 8만8000원, S석 5만5000원으로 대학로 시세를 맞추지 못했다. 대학로에서 티켓 가격을 높인 건 그만큼 자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중 하나가 아닌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고 싶은 자신감을 내포한 듯하다.

공연은 오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터파크 유니플렉스 1관에서 이어진다. ‘조로: 액터뮤지션’을 즐길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일단 안심하고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 ‘조로: 액터뮤지션’을 검색하자. 제작사가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나선 것. 15일까지 VIP·R석 40% 할인, S석은 1만5000원으로 1인 4매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예매 기간은 7일까지니 서두르는 것이 좋다.

100여년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을 대극장보다 더 큰 무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조로: 액터뮤지션’은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할 준비됐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