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 기자]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제도에 대한 이해와 장래성 없이 막무가내식으로 밀고 나갔다. 엄밀히 봤을 때 ‘샐러리캡’이라고 부를 수 없는 제도를 단순히 ‘운영비 절감’만 바라보고 설계했다. 2020년 1월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의 모습이 그랬다.
당시 KBO 이사회는 리그 전체의 판도를 바꾸는 굵직한 제도를 한 번에 발표했다. 프리에이전트(FA) 등급제, FA 취득 기간 1년 단축, 부상자 명단 신설, 최저 연봉 인상 등을 나란히 펼쳐 보였다. 여기에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시행되는 샐러리캡도 포함됐다.
그리고 한 명만 남았다. 당시 이사회 구성원 중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사는 SSG 민경삼 대표뿐이다. 나머지 9구단과 KBO 총재 모두 다른 얼굴로 바뀌었다. 연속성과 장래성 부재를 지적받는 KBO의 한계점이 또다시 드러났다.
샐러리캡이 특히 그렇다.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인데 무려 5년 후에도 시행될 제도를 확정 지어버렸다. 리그와 구단 매출과 비례해 정립해야 할 샐러리캡 상한선을 단순히 10구단 연봉 상위 40인 평균의 120%로 규정지었다. 당시 미국 프로스포츠에 대한 식견이 깊은 한 구단 임원은 “이게 무슨 샐러리캡 제도인가”라며 역정을 낸 바 있다.
샐러리캡의 핵심은 ‘안전장치’다. 리그·구단의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샐러리캡의 목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수입은 중계권료, 광고, 티켓 판매, 유니폼을 비롯한 구단 굿즈 판매다. 지출은 선수와 직원 급여를 포함한 구단 운영비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샐러리캡 상한선을 정한다. 상한선을 넘지 않는 구단은 흑자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선수 연봉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샐러리캡을 통해 무리한 지출을 막는다.
문제는 수입과 지출 모두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샐러리캡 상한선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 때문에 미국 프로스포츠는 일정 기간에 두고 노사 협정을 맺는다. 노사 협정을 통해 샐러리캡 상한선을 결정하는데 상한선을 두고 노사가 팽팽히 맞선다. 직장폐쇄, 그리고 직장폐쇄 후 밤샘 협상도 나온다. 샐러리캡 제도를 두고 미국프로농구(NBA)는 1998년과 2011년 직장폐쇄에 돌입했다.
KBO리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일단 샐러리캡 상한선이 흑자 구조를 보장하지 않는다. 수익·지출과 무관하게 몇몇 구단의 의견만 반영된 상태로 상한선이 만들어졌다. 수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계권료와 스폰서십 계약에 앞서 샐러리캡 상한선부터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노사 협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이사회는 물론 실행위원회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그나마 올해 처음으로 피치클락을 비롯한 새로운 경기 규정을 두고 선수협 사무총장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KBO 모든 규정이 그렇듯, 샐러리캡 제도 역시 언제 바뀔지 모르는 몇몇 구단 대표 이사의 뜻에 따라 결정됐다.
즉 예고된 파행이었다. 결국 지난달 31일 이사회에서 2025년까지 유지하기로 한 샐러리캡 제도를 수정했다. 상한선을 20% 증액했고 샐러리캡의 명칭도 ‘경쟁균형세’로 바꿨다. 상한선 초과시 부담하는 비용도 ‘제재금’에서 ‘야구발전기금’으로 변경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중계권 수익이 크게 늘었다. 올시즌 역대 최다 1000만 관중을 바라봄에 따라 티켓 수익도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그렇다고 손바닥 뒤집듯 이듬해까지 진행하기로 한 규정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수익이 늘었다면, 혹은 확실한 목표점이 있다면 그만큼 지출을 늘려서 제재금을 부담하는 것도 구단 운영 방법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ML)는 30구단 중 8구단, NBA도 30구단 중 8구단이 제재금으로 볼 수 있는 사치세를 부담했다. ‘제재금’이라는 단어에 부담을 느낀다면 샐러리캡이 한창 논의됐던 2019년에 이 단어를 바꿨어야 했다.
최근 이사회에서 결정한 샐러리캡 수정안은 2025년에 적용된다. KBO는 2026년부터 실행할 ‘경쟁균형세’를 제로 베이스부터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현실성과 지속성을 두루 갖추기 위해선 현재 제도를 전면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