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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역사와 전통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 때에만 그 의미가 있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전통은 시대적 소명을 다한 낡은 프레임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거나, 아니면 간판을 내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올해로 98회째를 맞아 충청북도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전국체육대회는 그동안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으로 제 역할을 다했지만 최근 시대에 맞게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만 지고 있다.

전국체전이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효시로 삼아 한 세기를 가깝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포츠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좁은 땅덩어리와 그리 많지 않은 인구에도 한국이 세계 스포츠 강대국으로 올라선 데는 솔직히 전국체전의 역할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특히 전국체전은 아마추어 종목의 균형적인 발전과 국제종합대회에서 특화된 한국의 효자종목을 육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랬던 전국체전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패러다임으로 비판받고 있는 이유는 기초종목 하향평준화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체전 다관왕 배출이 용이한 육상과 수영은 기록종목 특성상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밀어붙이는 도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국체전 성적표로 자신의 퍼포먼스를 평가받는 선수들에겐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밀어붙이는 사투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만 딸 수 있는 경기력을 유지하면 남 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초종목 선수 대부분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투쟁을 포기하고 안정적이면서 편한 생활을 위해 ‘전국체전용 선수’로 전락하고 만다. 전국체전이 기초종목 하향평준화의 원흉이라는 지적은 꽤 설득력있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동네잔치’로 전락한 전국체전을 권위있는 이벤트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경쟁력없이 비대화된 전국체전을 슬림화하는 게 가장 시급히 해야할 일이다. 고등학교,대학교,일반부로 나뉘어진 종목별 카테고리를 오픈 카테고리로 통합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야만 대회 권위가 생길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될 수 있다. 국내 스포츠는 선수층이 워낙 얇아 예선전을 눈치로 뛰고 결승전 한 경기에만 최선을 다하는 습관이 만연화됐다. 국제대회에선 예선부터 최선을 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예선을 설렁설렁 뛰는 버릇이 국제대회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져 기초종목 선수 대부분은 국제대회에서 자신의 기록도 내지 못하는 졸전을 벌이곤 한다. 결승전 한 경기에만 최선을 다하는 나쁜 습관이 몸에 밴 탓에 예선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국제대회 결과는 늘 신통치 않다. 이게 바로 자기 기록도 잘 깨지 못하는 기초종목 선수들의 반복되는 국제대회 실패 유형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생존수단을 제공하는 시도체육회도 이 참에 의식을 전환해야 한다. 선수들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기 위해 다양한 동기부여에 힘써야지 전국체전에 목을 매는 근시안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재계약하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더 큰 무대 즉 국제무대에서의 기록과 성적을 높이 평가해주는 새로운 인사평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국 체육도 비로소 질적 도약을 꾀할 수 있다.

전국체전의 개최 시점 또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전국체전의 성적이 곧 시도체육회와의 재계약 여부의 열쇠인 만큼 한국 선수들의 몸은 대부분 전국체전이 열리는 10월에 베스트로 맞춰져 있다. 그러나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 스포츠 빅이벤트는 모두 8월에 열리는 게 국제 관례다. 전국체전을 앞당기자는 제안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해마다 열리는 전국체전의 주기별 개최도 고려해봄직한 사안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수많은 글로벌 스포츠 콘텐츠를 접하고 있는 게 현실인 만큼 ‘동네 잔치’로 전락한 전국체전은 국민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매력적인 콘텐츠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전국체전이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스포츠 제전으로 재도약하기 위해선 최고의 경기력으로 권위를 회복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전국체전의 격년제 혹은 다년 주기별 개최는 그런 의미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국체전이 총체적인 위기다. 한국 스포츠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보물단지가 자칫 발목을 잡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다. 지금의 전국체전은 더 이상 우리 몸에 맞는 옷은 아니다. 몸은 너무 커졌고, 새롭게 갈아입을 옷도 더 커질 몸을 염두에 두고 넉넉하게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