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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잉글랜드의 월드컵 저주를 푸는 마술이 ‘캡틴’이자 간판공격수 해리 케인의 발끝에서 펼쳐지고 있다. 2015~2016·2016~201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을 연속으로 해낸 케인이 월드컵 득점왕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케인은 4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콜롬비아와 경기에서 0-0으로 맞선 후반 12분 페널티킥(PK)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번 대회 6호 골. 득점 공동 2위인 로멜루 루카쿠(벨기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이상 4골)와 격차를 2골로 벌리면서 득점 선두를 굳건히 했다. 호날두는 팀이 16강에서 탈락하면서 더는 경쟁 상대가 아니다. 한 골만 더 넣으면 4년 전 브라질 대회에서 골든부츠(득점왕)를 받은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의 기록과 같아진다.
케인의 이 골은 잉글랜드 월드컵 역사에도 의미가 있다. 케인의 한 대회 6골은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잉글랜드 선수로는 처음으로 득점왕에 오른 게리 리네커 이후로 32년 만이다. 리네커는 당시 폴란드전 해트트릭, 파라과이와 16강전 멀티골 등을 앞세워 6골을 달성했다. 케인도 이번 대회 조별리그 튀니지전 멀티골, 파나마전에서 해트트릭에 이어 콜롬비아와 16강전에서 골 맛을 봤다. 32년 만에 잉글랜드 선수 득점왕 배출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단순히 골 뿐 아니라 케인은 잉글랜드 정신적 지주로 발돋움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헌신하고 있다. 이날 콜롬비아는 잉글랜드 공세에 거친 태클과 신경전으로 맞대응했다. 라힘 스털링, 조던 헨더슨 등 동료들이 콜롬비아 선수들과 충돌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가장 많은 견제를 받는 케인은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했다. 오히려 후반 8분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 미드필더 카를로스 산체스의 거친 방어를 역이용했다. 산체스가 머리를 밀어넣으며 견제하자 문전으로 들어가는 동작을 하다가 넘어졌다. 이때 산체스가 손으로 슬쩍 미는 동작까지 잡혔는데 주심은 곧바로 PK를 선언한 것이다. 자신이 얻어낸 PK를 깔끔하게 차 넣었다. 케인은 후반 중반 이후엔 2선 하프라인까지 내려와 수비에 힘을 보태고, 특유의 힘과 기술을 이용해 볼 소유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등 중심 구실을 했다. 특히 후반 37분과 43분 2선 지역에서 유연한 드리블로 상대 반칙을 유도, 프리킥을 얻어내며 시간을 지연시키는 노련한 플레이로 콜롬비아를 괴롭혔다. 갈수록 콜롬비아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콜롬비아가 키 195㎝ 장신 수비수 예리 미나의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로 기사회생했을 때도 케인은 흔들림이 없었다. 연장을 넘어 승부차기로 이어진 상황에서 1번 키커로 나섰다. 앞서 라다멜 팔카오가 먼저 성공한 상황. 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골문 왼쪽으로 정확하게 차 넣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케인을 이날 경기 ‘맨 오브 더 매치(Mom)’로 선정했다.
케인의 기를 이어받은 잉글랜드는 전,후반 연장까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웃었다. 3번 키커 조던 헨더슨이 실축했지만, 콜롬비아 4번 마테우스 우리베의 슛도 골대를 때렸다. 3-3으로 맞선 가운데 최종 키커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콜롬비아 카를로스 바카의 슛을 조던 픽포드 잉글랜드 골키퍼가 손을 쭉 뻗어 막아냈다. 이어 에릭 다이어가 침착하게 콜롬비아 골망을 흔들면서 4-3으로 이겼다. 잉글랜드는 2006년 독일 대회 이후 12년 만에 8강에 진출했다.
승부차기 징크스에서 벗어난 것도 눈길을 끈다. 잉글랜드는 앞서 세 차례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모두 졌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서독과 4강전, 1998년 프랑스 대회 아르헨티나와 16강전, 2006년 독일 대회 포르투갈과 8강전 모두 승부차기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날 징크스를 털어내고 마침내 웃었다. 7일 밤 11시 사마라에서 스웨덴과 4강행 티켓을 두고 겨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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