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다
장부다 대표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폴인풋볼’은 축구에 ‘푹’ 빠진 축구 산업 종사자들을 만나는 코너입니다. 축구에 매료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치고 이 사람의 디자인을 보지 못한 팬은 드물 것이다. 국가대표에서 프로, 아마추어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에서 수많은 축구 관련 디자인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붉은악마, 대전 시티즌, 경남FC, 광주FC, 안산 그리너스, 아산 무궁화, 수원FC, WK리그, K3리그, 박지성축구센터 등 무수한 엠블럼을 디자인한 장부다(51)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포츠 디자인 마케팅 회사 부다장(BUDAJANG)을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장 대표는 한국 축구 디자인의 ‘시조’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가 축구에 푹 빠지면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변했고, 미국 프로스포츠를 따라갔던 한국 프로 축구 디자인도 달라졌다. 단순히 축구가 좋아 붉은 악마의 태동기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던 장 대표는 조금씩 한국 축구 산업을 바꾸고 있다.

◇장부다 대표와 한국 축구의 우연한 만남

장 대표는 축구를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여느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창 시절 그가 좋아했던 축구 선수는 포항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의 최순호였다. 또 당시 공중파에 가끔 중계해주는 차범근의 경기 영상이나 영국 풋볼 리그(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전신) 영상을 즐겨 보는 축구팬이었다.

한국 축구와의 인연은 그가 이벤트 회사에 취업하고 기획과 디자인을 담당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장 대표는 96년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유치 경쟁 중일 때 유치 기원 초청 경기를 기획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가능했던 우리 국가대표팀과 이탈리아 세리에A AC밀란, 유벤투스의 매칭이었다. 장 대표는 “당시 국내 기업에서 해외 유명 기업의 에너지 음료를 출시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기획된 게 초청 경기다. 당대 최고 리그였던 세리에A를 대표하는 로베르토 바조(AC밀란)와 잔루카 비알리(유벤투스)가 에너지 음료 홍보 모델이었기에 두 팀을 초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97년에는 영국 스포츠브랜드의 국내 런칭을 맡은 광고 대행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당시 해당 브랜드 유니폼을 사용했던 전남 드래곤즈의 트레이닝 저지를 디자인했다. 부모의 반대로 미대 진학을 포기했던 그가 뜻밖의 장소에서 축구 디자인이라는 운명을 만나며 재능을 발현하기 시작한 것. 붉은악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 클럽’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99년 브라질전을 앞두고 응원 깃발이 필요하다는 붉은악마 운영진의 의뢰로 붉은악마의 상징이 된 ‘치우천왕’을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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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표는 지난 2000년 대전 시티즌의 엠블럼을 디자인하면서 한국 축구 디자인산업에 본격적으로 몸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K리그는 미국 프로스포츠의 영향으로 캐릭터 중심의 엠블럼이 많았다. 하지만 장 대표 등장 이후 좀 더 유럽 축구의 스타일로 바뀌어갔다. 각 지역별 정체성이 담긴 디자인도 제시했다. 장 대표는 “유럽에서 시작된 축구 엠블럼이라는 게 원래 가문의 문장, 지역의 문장이다. 그래서 중세에서 근세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내가 디자인한 K리그 엠블럼에는 축구 냄새가 나는 기본적인 틀에다가 각 지역의 정체성을 넣었다”고 말했다.

◇아직도 갈 길 먼 한국 축구 디자인의 현실

장 대표가 한국 축구 디자인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은지 이제 20년여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적다. 장 대표는 “질적으로 조금 더 깊어지긴 했지만 양적인 팽창만 했다”며 “아직 본게임에 들어가지 않았다. 걸음마 단계일 뿐”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한국 축구에서 디자인을 생각하는 범위가 그만큼 좁다는 뜻이었다.

장 대표는 “클럽이라는 기업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진다. 디자인은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클럽의 설계부터 이 클럽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조직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축구계 인사들은 이러한 단계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뱉었다. 구단의 전체적인 기획·마케팅 분야보다 선수단 관리가 우선시된다는 말이다.

최근 대구FC가 팀을 브랜딩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희망적인 부분으로 봤다. 대구 시내 중심지에 축구전용경기장을 건설한 것부터 얼마 전 경기 중 하프타임에 입단식을 치른 브라질 외인 히우두의 예처럼 하나의 정체성으로 움직이고 있다. 장 대표는 “대구가 잘하고 있지만 아주 뛰어나게 잘하는 건 아니다. 기본을 하는 거다. 재정이 풍부한 다른 구단이 이미 해야했을 것을 가장 기본대로 하는 것”이라며 “제일 정상적인 마케팅 활동을 하는 구단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구단 프런트도 깨어있는 재원들이 많다. 그러나 예산이 없다보니 실천할 수 없는 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한국 축구가 많은 외적 발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기업의 체육부 또는 지자체의 체육부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장 대표는 “클럽을 하나의 사업체로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브랜딩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실행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최근에서야 의식이 깨면서 브랜딩의 필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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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산업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최근들어 축구 디자인 분야에 진출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20년 전 장부다 대표처럼 그들도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일례가 스타트업 포워드의 최호근 대표다. 포워드는 대구의 공식 용품 후원 업체로 축구계의 디자인 역량을 한층 업그레이드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축구계 인사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큰 틀에서 변화가 어려운 게 업계의 현실이다. 장 대표 역시 20년여간 축구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여전히 현실은 열악하다. 구단 운영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다보니 예산배정에서도 밀린다. 신진 디자이너가 뛰어들어도 오래가기 힘든 구조다. 축구 산업의 파이 자체가 크지 않은 것도 문제다.

실례로 한 구단으로부터 일을 의뢰받아 작업한 장 대표는 구단 예산 부족으로 보수를 A보드 광고로 대신 받았다. 뜻밖에 회사 이름이 A보드에 박히며 자신의 이름을 광고한 적도 있다. 결국 이런 문제가 고쳐지고 축구 산업의 발전이 있으려면 축구 디자인에 대한 업계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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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다 대표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연고 개념이란’

장부다 대표가 한국 축구의 현실에 대해 설토할 수 있는 건 그가 현장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지난 2000년부터 서울시민구단을 창단하려 힘썼다. 당시만 해도 없던 서울 프로팀을 창단하기 위해 움직인 그는 대표팀 관련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유명 브랜드의 담당자들에게 후원을 어필했다. 오랜 기간 설득 끝에 지난 2006년 창단한 서울 유나이티드의 후원 업체 계약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당시 서울 유나이티드는 2007년 신설된 K3리그(4부리그격)에 참여하며 많은 바람을 일으켰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로 이뤄진 팀 운영은 당시 장부다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프로 못지않는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구단 미디어의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을 때 ‘SUTV’라는 자체 미디어 채널을 만들어 경기를 중계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3년간 꾸준히 유명 브랜드로부터 후원받으며 안정적으로 지역 연고 정착을 이뤄갔다. 그러나 구단 경영진이 잠실운동장 보조 경기장 대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효창운동장과 노원마들스타디움으로 이동해야 했다.

장 대표는 “경영진이 연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 이제 막 연고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중소도시는 도시지역 연고가 맞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축구에서 연고는 경기장이 중심이다. 거리가 멀수록 관객의 접근성이 좋지 않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상암, 효창, 잠실, 노원 전부 다른 연고인 것”이라며 “영국 런던이 1000만 도시라고 하는데 서울과 비슷하다. 런던에는 4부리그까지 프로가 25팀 정도 있다. 우리로 치면 구마다 하나씩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장부다 대표는 서울 유나이티드의 핵심 계획이 ‘경기장 재건축’이었다고 밝혔다. 경기장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통해 축구팀에 자생할 수 있는 상업 모델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매우 구체적인 전체 디자인을 갖고 있었지만 지난 2009년 뜻하지 않은 경영진의 결정으로 구단을 떠나게 됐다.

장 대표가 구상하는 디자인은 확고했다. 축구팀 하나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가 뭉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림을 그렸다. 모든 문제를 해소하는 문이 축구팀이라는 의미의 ‘팀은 포털이다(Team is portal)’는 장 대표가 강조하는 슬로건이다. 팀 하나의 연명이 아닌 연고지 전체가 발전하는 그림이다. 장 대표는 “모든 분야의 최대 공통 분모를 축구로 삼을 수 있는 사업을 연구해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puri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