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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정책과 숫자는 함께 움직이는 그런 관계다.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정책 효과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해주는 수단으로 숫자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숫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때론 전체적인 밑그림을 이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보이는 것에 천착(穿鑿)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현상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의 그림을 놓칠 수 있어서다. 따라서 새로운 정책이 도입될 때는 늘 세심한 통찰과 맥락적 흐름을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한체육회의 학교 연계형 공공 스포츠클럽 선정은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3일 학교 연계형 공공 스포츠클럽 21개를 선정,발표했다.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담보할 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현장의 열기는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5년간 최대 4억원 지원이라는 먹음직스런 당근을 제시했건만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이 부담해야 하는 매칭펀드 1억원과 시설 이용과 관련한 8년이라는 장기계약이 걸림돌로 작용한 탓이다. 치열한 경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응모한 21개 단체 중 시설 미비로 1개 단체만 조건부 승인에 그친 가운데 나머지 20개 단체 모두가 공공스포츠클럽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러한 상황도 제대로 모른 채 21개 단체의 공공 스포츠클럽 선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정책 평가란 무릇 다양한 시각과 종합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스포츠클럽으로 선정된 21개 팀 가운데 무려 7개가 기존의 학교 체육팀에서 전환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는 숫자속에 숨겨진 중요한 진실이다. 기존의 7개 학교 체육팀이 클럽팀으로 전환한 이유는 체육의 질적 변화라기 보다는 5년간 4억원이라는 지원금을 받기 위한 불가피한 변신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 체육의 발전적 미래지형과는 별 상관이 없는 학교 체육팀의 교묘한 변신에 지나지 않는다.

스포츠클럽으로 치닫는 한국 체육의 지형변화는 부인하지는 않겠다. 다만 새로운 체육 생태계의 생명은 다양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난 2016년 체육단체 통합의 가치와 명분은 무엇이었나?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그리고 전문체육이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체육 생태계의 조성,바로 그것이었다. 성격이 다른 세가지 분야가 서로 유기적으로 상생하고 선순환할 수 있는 조화로운 체육 생태계의 구축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자 명분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최근 체육정책을 꼼꼼히 살펴보면 종전의 체육 시스템과 가치는 무시하거나 폄훼하는 쪽으로 정책적 방향을 설정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클럽 스포츠가 기존의 학교체육,특히 엘리트 선수를 양성하는 전통의 학교 체육팀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번 정책이 통합의 명분에 맞게 시행됐다면 기존의 학교 체육팀을 유지시키면서 클럽팀을 새롭게 창단하는 쪽으로 활용됐어야 했다. 스포츠 클럽팀을 만들기 위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기존의 학교팀을 해체하는 결과를 양산한 것은 제대로 된 정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정책의 역효과로 평가하는 게 맞다.

살아 움직이는 현장은 늘 그렇듯 머리보다 한발 앞서 돌아가게 마련이다. 정책 입안자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사안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자세로 정책을 만들어 놓아도 대부분의 정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현장에 발 붙이고 있는 인간의 계산능력이 더 빨리 반응하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늘 정책은 선제적이어야 하며 정책 결과 또한 정확하게 예측해야 성공적인 정책으로 뿌리 내릴 수 있다.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지만 학교 연계형 공공 스포츠클럽 정책은 여러모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적어도 학교가 전통의 체육팀을 해체하고 ‘눈 속임용’ 클럽팀을 창단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한국 체육의 전체지형을 고려하면 성공작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하석상대(下石上臺)’는 실패를 교묘하게 포장하는 꼼수이자 기만일 뿐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