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미나리

[스포츠서울 이선율기자]영화 ‘기생충’ 이후 ‘미나리’가 한국적인 소재를 잘 녹여낸 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 이민간 한인가정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일상을 다룬 이번 영화에는 이력이 화려한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화제다.

23일 오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 온라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배우 윤여정, 한예리가 참여했고, 감독 리 아이작 정(정이삭)과 스티븐 연은 화상으로 취재진과 함께했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미국 이민을 선택한 어느 한국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로 2020년 선댄스 영화제 드라마틱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특히 메가폰을 잡은 정이삭 감독은 ‘문유랑가보’로 칸 국제영화제 진출, AFI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미나리 감독

이 영화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투영됐다. 그는 특히 윌라 캐더 작가의 소설 ‘마이 안토니아’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이번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정 감독은 “윌라 캐더 작가가 실제로 농장에서 자신이 살았던 이야기를 쓴 작품으로, 이런 이야기가 내 삶과 얼마나 같은 지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저의 1980년대 기억을 가지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고, 그 기억의 순서를 되짚어보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나열해봤다.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가족에게 실제로 있었고, 그 이야기들을 투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용을 만들어보니 다큐가 아니라 장편 영화가 됐다. 제 이야기는 영감을 받은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배우들이 실존 인물에 영감을 받아 연기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가 창조됐다”고 말했다.

제목을 ‘미나리’라고 명칭한 이유에 대해 “실제 제 가족이 미국에 갔을때 할머니가 미나리 씨앗을 가져가서 심었다. 미나리의 경우 우리 가족만을 위해 심고 길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심고 기른 것중 잘 자란 식물이다. 할머니가 저희에게 가진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 가 싶다. 미나리 자체가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고 감정과 정서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가진 내용이 녹아있는 제목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예리-horz

스티븐 연은 “저희 가족은 캐나다로 이주하고 조용한 서부의 시골에서 살았다. 이런 경험들이 영화와 비슷하게 녹아있다”고 공감했다. 그는 이어 “이민을 해서 사는 삶이란 언어나 문화, 소통의 차이가 있어 하나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의 영화 내용을 보며 공감했고, 진실되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저희에게 많은 공간을 줘서, 우리의 캐릭터를 쉽게 투영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민자로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면서 어느 곳에도 소속돼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에 껴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끼리 훨씬 더 연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제이콥 역할을 하면서 우리 아버지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삶에 있어서 힘겨웠던 투쟁을 이겨냈다. 우리 아버지가 미국에 오면서 꿈꿨던 동기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또 한예리, 윤여정과 작업하며 개인적으로 보지 못했던 심오하고 진지한 이야기들 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여정과 한예리는 이번 작품이 첫 할리우드 영화다. 두 사람은 정이삭 감독를 향한 신뢰로 고민 없이 작품에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윤여정은 “저는 나이가 많아서, 지금은 작품이 어떻다 하는 것을 따지기보다 사람을 보고 일을 한다. 아이작 감독을 처음 만났는데,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진지하고 순수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저를 알고, 또 한국 영화를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아이작 감독이 쓴 것인지 모르고 받았는데 이야기가 정말 리얼했다. 그냥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예리는 “영어를 하지 못 하는데도 감독님과 소통이 잘돼 ‘잘 할 것 같다’는 믿음이 이상하게 생겼다”며 “제가 맡은 ‘모니카’는 영화에서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엄마, 이모, 할머니에게서 봤던 모습들이 모니카에 있었다. 감독님과 모니카라는 사람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어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첫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두사람은 “실제로 할리우드에 간 적도 없고, 너무 거창하게 기사가 났다”고 부담스러워했다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정 감독과의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에 정 감독은 일단 머리 속에 영어를 먼저 떠올린 후 한국어로 대본을 쓰고, 이후 배우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배우들의 캐스팅 이유에 대해 감독은 “최고의 배우들이었고, 바쁜 와중에 스케쥴을 낼 수 있어 작업이 가능했다”면서 “할머니 역할의 윤여정은 고약한 말을 하지만 실제론 정직하고 서슴없이 사랑할 수 있는 역할을 소화해내기 딱이라고 봤다. 한예리는 모니카의 외유내강한 성격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스티브 연은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깊은 이해의 결을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감독은 “‘기생충’이 미국 관객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는 걸 보며 그들이 포용하는 폭이 더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적인 콘텐츠가 전 세계 관객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melod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