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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과 원두재가 ‘동해안더비’를 이틀 앞둔 1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화상으로 미디어데이를 하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굉장히 오랜만에 스틸야드를 간다. 기회가 된다면 포항 팬에게 인사드렸으면….”

선수 시절 K리그에서 ‘포항 스틸러스 원클럽맨’으로 뛴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은 라이벌전을 앞두고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홍 감독은 포항전을 이틀 앞둔 1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동해안더비(포항과 울산의 라이벌전) 화상 미디어데이’에서 ‘경기 직후 포항 팬에게 인사할 의향이 있느냐’는 말에 멋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K리그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동해안 더비는 올해 ‘홍명보 더비’로 불꽃같이 타오르고 있다. 홍 감독은 “포항은 내가 K리그에서 유일하게 선수 생활을 했고, 땀과 열정이 묻어있는 곳이다. 원정 라커룸에 들어가면 새로운 기분일 것 같다”며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한때 FC서울과 수원삼성이 맞붙는 ‘슈퍼매치’보다 주목도가 떨어졌던 ‘동해안더비’는 몇 년 사이 다시 대표 라이벌전으로 우뚝 섰다. 최근 10경기에서 단 한 번도 무승부가 나오지 않았다. 울산이 6승4패로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패배의 아픔은 울산이 더 크다. 대표적으로 2019년 리그 최종전. 울산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컵을 들 수 있었으나 포항에 1-4로 져 전북 현대에 챔피언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울산은 지난해에 포항과 첫 맞대결(6월6일)에서 4-0으로 설욕했으나, 두 번째 원정 경기(10월18일)에서 정반대로 0-4 완패했다. 울산은 이 패배 직후 전북전(0-1 패)까지 놓치면서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반면 포항은 울산의 우승을 연달아 저지하며 고춧가루 부대 구실을 했다. 라이벌 의식이 극에 달한 시점에 ‘포항 리빙 레전드’ 홍 감독이 울산 지휘봉을 잡고 스틸야드를 방문하는 만큼 더 큰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홍 감독은 1991년 포항 입단 동기를 지낸 또다른 ‘포항의 역사’ 김기동 감독과 지략 대결을 펼친다. 홍 감독은 고려대 재학 시절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포항 입단 때도 차세대 스타였다. 1997년 일본 J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 포항의 간판으로 뛰었다. 일본 생활을 접고 2002년 포항으로 복귀해 잠시 뛴 그는 그해 11월 미국 무대로 옮겼고, 2004년 은퇴했다. 반면 김 감독은 고졸 출신 연습생으로 포항에 입성했다. 처음엔 자리 잡지 못했지만 1993년부터 유공(부천SK 전신)으로 옮겨 2002년까지 활약, 제 가치를 알렸고. 그리고 포항으로 컴백해 2011년까지 ‘철인 축구’로 K리그 통산 501경기(39골40도움)를 뛰면서 홍 감독처럼 포항의 아이콘이 됐다.

홍 감독은 “김 감독하고 방도 잠시 함께 쓴 기억이 있다. 그때 사투리를 많이 쓴 기억이 있는데, 체구는 작지만 축구를 아주 잘했다”고 떠올렸다. 그러자 김 감독은 “한방을 쓴 게 맞다. 근데 홍 감독께서는 그때 이미 대표 선수였다. 바라볼 수 없는 존재였고 말 한마디 걸기 어려웠다”고 미소지었다. 둘은 서로를 향해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홍 감독은 “그 시절 김 감독이 선수든 다른 것이든 성공하리라고 여겼다. 지금 포항은 훌륭한 감독 밑에서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모두 유기적으로 잘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감독도 “홍 감독께서 짧은 시일에 울산을 원팀으로 만들었다. 공수 전환이 매우 빨라졌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고 했던가. 덕담을 주고받다가도 승리욕을 숨기지 않았다. 김 감독은 “지난 제주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져도 괜찮다. 울산만 이겨달라’고 했다”고 홍 감독을 자극했다. 홍 감독은 “울산 감독으로 (포항에서) 좋은 추억은 잠시 접어두고 원정에서 이기겠다”며 끝장 승부를 다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