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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 “술은 취하려 먹는 게 아니다.”
폭탄주가 익숙한 우리 주류 문화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튜버 주류학개론(본명 서원경)의 말이다. ‘부어라 마셔라’가 일반적인 우리 주류 문화는 고도성장기를 거쳐온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다. 고달픈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독한 술로 빨리 취하려는 노동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유난히 술을 빨리, 많이 먹는 음주문화 때문일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간암 발병률 1위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었고, 주류 문화도 바뀔 때가 되었다. 지난해부터 주류를 콘텐츠로 유튜브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주류학개론은 바른 주류 문화로 삶을 윤택하게 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취하려고 먹는 게 술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주류학개론이 제시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우리나라 주류 문화가 잘못됐다고?우리나라 주류 문화는 단순화되어 있다. 이게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술 마시는 장면을 보고 ‘술은 저렇게 먹는 거구나’하고 사람들이 배워서 그런 것이다. 이 문화는 역사적인 배경도 한 몫한다. 일제 강압기부터 양곡령(식량부족을 이유로 쌀 등 곡식으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한 정책) 등으로 우리는 좋은 술을 못 마셨다. 과거 일본 유학 시절 다양한 주류를 즐기는 일본인들을 보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우리는 술의 맛과 향 모두 즐길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다수의 성인이 대학에서 음주 문화를 접할 때 그저 먹고 취하는 거다.
-우리 주류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나.다양한 술을 즐길 수 있도록 바뀌길 원한다. 바를 운영 중인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술은 취하려고 먹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취하려고 먹는 술은 ‘통화만 하려고 최신 스마트폰을 사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술을 즐기는 요인에는 맛과 향, 술병 모양, 비주얼, 역사 등이 있다. 이런 요소가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이라고 치면 우리의 음주 문화는 기본 기능만 사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간암 발병률도 높다.위스키 동호회를 보면 술 잘 마실 것처럼 생긴 분도 업장에 오면 3~4잔이 끝이다. 취기가 오르면 맛과 향 구분을 못 한다. 그럼 이걸 마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맛과 향을 즐기려고 비싼 돈 주고 위스키를 마시는 건데, 그걸 못 느끼면 마시는 의미가 없는 거다. 음주 문화가 바뀌면 자연스레 많이 마시는 모습들도 사라질 거다.
-음주 문화를 올바르게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증류주(위스키, 브랜디 등 발효된 술을 끓여서 얻는 술)를 마시면서 맛이 다 똑같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위스키 종류는 향을 즐겨야 한다. 개인적으로 와인은 향과 맛을 50대 50으로 즐겨야 한다고 본다. 이에 반해 위스키는 향이 80%다. 도수도 최소 40도이기에 맛을 느끼려 입에 머금고 있으면 얼얼해서 맛을 잘 못 느낀다. 그래서 향 위주로 즐기는 거다. 위스키의 향은 오크통에서 10년, 20년 이상 숙성해서 향이 각각 다르다. 향을 내려고 30년 숙성한 것을 털어먹거나, 말아 먹으면 솔직히 아깝다. 쉽게 말해 싱싱한 돗돔을 회로 먹는 게 아니라 어묵으로 만들어 먹는 거라고 보면 된다.
-향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 아닌가.그래서 손님이 업장에 찾아오면 스무고개를 한다. 예를 들어 잘 나가는 술을 달라고 하면, 나는 그런 술은 없다고 말한다. 술은 취향의 문제다. 만약 내가 단 것을 줬는데, 손님이 단 것을 싫어한다면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뭐, 이런 걸 추천해줬냐’고 내가 욕먹을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스무고개를 해서 손님의 취향을 알아내 제일 가까운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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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다가 바텐더로서 바를 운영하게 된 건가.
바는 지난 2017년 9월에 오픈했다. 이전에는 여러 일을 했다. 대학 졸업 뒤 통·번역 일을 했다. 당시에는 음악을 좋아해 홍대에서 밴드 활동도 했다. 그래서 드라마 OST 회사에 들어가 근무하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게 업이 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더라. 이후 프래그래머, 사업 등을 거쳐 지금 바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갑자기 바를 운영한 이유가 뭔가.사회에서 일하던 중 술도 즐겼다. 나중에 은퇴해서 재즈 바 하나 차려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사업이 잘 안돼서 회사로 돌아가려다 보니 경력이 단절됐다. 돌아가도 오래 할 것 같진 않으니 꿈을 빨리 실현하고 싶었다. 다만 내가 전문가로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니까 공부해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세미나도 많이 다니면서 배워 바 운영을 시작했다.
-바텐더로서 바를 운영하고 있는데, 바텐더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바텐더는 술에 대한 전문가여야 한다. 손님이 원하는 취향에 맞춰야 하고, 손님이 술을 즐길 수 있도록 재미있게 스토리텔링도 해야 한다. 2000년 초반에 칵테일 제조 장면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플레어바(flair Bar)라는 게 유행한 적 있다. 바텐더는 서비스직이라 술에 관한 역사, 비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 등을 제공해야 하는 직업이다.
-바텐더는 스토리텔러로서 역할이 큰 것 같다.바텐더를 희망하는 분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기도 하다. 바텐더가 술에 대해 잘 알고 만드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배우려는 분도 많다. 하지만 서비스직이라 멘털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손님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중요한데 여기서 괴리감을 느끼는 분도 있다. 바텐더의 역할 폭이 넓다. 대화가 되려면 시사, 경제 등 전문 분야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기에 공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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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노력을 했지만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소상공인이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괜찮은가?
코로나19 여파로 오후 9시까지 영업 제한이 있을 땐 그냥 평일에는 문을 닫았다. 지난해 9월 문을 열기도 했지만 손님들이 거의 오지 못했다. 서울에서 퇴근 뒤 저녁 식사하고 오면 술 마실 시간이 거의 없다. 그나마 10시로 영업제한이 완화된 뒤로는 나아졌다. 혼자 영업하다보니 다른 사업자들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다. 허리띠 졸라매고 긴축하며 버티는 중이다. 수입적인 문제도 있지만 손님들이 조금밖에 못 오는 게 아쉽다. 정부 방침으로 영업시간이 짧아서 손님이 같은 시간대에 몰릴 수밖에 없다. 바빠지면 자연스럽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직원을 늘리려고 해도 현재 혼자 하는 만큼 퀄리티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많은 손님이 몰리는 게 고민이라서 업장을 홍보하지 않는다고?구독자들이 처음에는 가게 위치를 많이 물었다. ‘검색해서 올 분은 오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힌트도 많이 줬다. 초반에 구독자가 없을 땐 상관없었는데, 어느 순간 구독자가 늘어나자 찾아오는 분도 많아졌다. 심지어 영상을 보고 강원도 원주에서 찾아온 분도 있었지만 자리가 없어서 2시간 기다리다가 그냥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사람을 더 뽑는다고 해도 서빙과 설거지만 맡길 수밖에 없다. 손님들에게 (술) 추천을 드리고, 술에 관한 역사를 설명하려면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인재가 많지 않다.
-앞으로 유튜브 채널 운영을 어떻게 할 계획인가.나는 주류 문화를 바꾸기 위해 바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소개할 새로운 술이 정말 많다. 지금처럼 맛과 향, 역사 등을 소개하고 여러 칵테일 제조법을 공개할 생각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풀리면 우리나라 양조장이나 해외 양조장을 돌아다니면서 소개하고 싶다.
puri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