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김상식(49) 감독은 ‘국가 영웅’으로 우뚝 섰다.

김 감독은 지난 5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태국과의 2024 아세안 챔피언십(미츠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승리한 후 우승하며 베트남의 영웅이 됐다. 박항서 전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거듭났다.

7일 화상 기자회견을 통해 김 감독은 “한 편의 드라마를 쓴 것 같다. 매 순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황스럽지만 슬기롭게 헤쳐가기도 했다”라면서 “결승 2차전에서는 두 번째 실점 장면이 기억난다. 태국의 비매너로 인해 우리가 실점했는데 더 투지를 발휘했다. 그 장면이 우승의 원동력이었다”라고 돌아봤다. 당시 태국은 베트남이 부상으로 인해 내보낸 공을 받아 돌려주지 않고 슛으로 연결해 득점했다. 명백한 비매너였지만 베트남은 이를 극복하고 승리했다.

이번 우승을 기념하며 베트남의 팜 민 찐 총리는 대표팀에 1급 노동훈장, 응우옌 쑤언 손 등 크게 활약한 선수 6명에게 3급 노동훈장, 팀원 29명에게 공로상을 각각 수여했다. 외국인인 김 감독의 경우 추가 절차를 밟은 후 훈장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열기가 장난 아니다. 공항에 내려 길거리에서 베트남 국민의 응원을 받았다. 도로에 인파가 많아 놀랐다. 총리님을 보러 관사에 갔는데 환영해주고 격려해줬다. 흐뭇했다”라면서 “한국 분들도 많이 만난다.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주신다. 일이 잘된다고 밥 한번 사고 싶다고 하시더라. 박항서 감독님 이후에 또다시 한국 지도자가 도움을 주게 되어 뿌듯하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성과의 원동력은 ‘변화’에서 나온다. 김 감독은 “박항서 감독님의 성공과 전임 사령탑의 실패 원인을 모두 찾아봤다. 중간에서 변화를 두고 고민했다. 발품을 많이 팔았다. 3부 리그까지 다니면서 선수들의 상태, 경기력, 버릇까지 확인했다. 전 감독의 경우 세대교체가 너무 빨랐다고 본다. 어린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경험이 부족해 대표선수로서 큰 경기에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일관성 있게 선수들을 지도한 것도 통했다”라며 성공 요인을 설명했다.

엄청난 반전이다. 김 감독은 2023시즌 전북 현대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장했다. 성적 부진 속 일부 팬의 과도한 비난, 신인 공격까지 받으며 쓸쓸하게 팀을 나왔다.

김 감독은 “전북 시절 생각도 많이 났다. 우승을 통해 한국, 전북 팬에게도 보여준 것 같다. 사람이라는 게 고운 정 미운 정이 있다. 나가라고 외치던 함성이 그립기도 하다”라며 웃은 뒤 “선수, 코치, 감독으로 많이 우승했는데 바보 소리도 들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어 그는 “전북에서 나온 뒤 힘든 시기를 겪으며 방황도 했다. 그래도 시작해야 했다. 멈추지 말아야 했다. 확신은 없었지만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박 감독에 이어 새로운 신화의 주인공이 됐지만 김 감독은 차분하게 미래를 바라본다. 그는 “박 감독님의 업적은 너무 엄청나서 따라갈 생각이 없다. 능가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못 따라간다. 그저 대표팀, 베트남 축구 발전만 생각할 뿐이다. 더 노력하면 결과는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내 길을 묵묵히 가겠다”라고 말했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