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최민우 기자] 포스트시즌(PS) 진출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했다. 부상자가 속출해 힘겨운 싸움을 벌였지만, 매 경기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가을의 기적을 써내려 가고 있다.
객관적 전력이 열세라 드라마가 조기 종영의 위기에 처했지만, ‘주연’ 정수빈(31)이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두산을 다음 시리즈로 이끌었다. 아직 두산의 ‘가을 드라마’는 끝이 나지 않았다.
|
두산은 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준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10-3으로 이겼다. 특히 정수빈의 활약이 돋보였다. 1번 타자 중견수로 출전한 정수빈은 5타수 3안타 1볼넷 4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선취점을 낼 때도, 승리의 쐐기를 박을 때도 정수빈이 있었다. 1회 중전 안타로 출루한 뒤, 호세 페르난데스의 2루타 때 홈을 밟아 팀에 리드를 안겼다. 3-1로 앞선 4회에도 1타점 적시타를 때려냈고, 5회 2사 만루 때 싹쓸이 3루타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정수빈은 개인 통산 5번째 3루타로 PS 최다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
정수빈은 수비에서 더 빛을 냈다. 그의 ‘시그니처 무브’(Signature Move)인 다이빙 캐치를 두 차례 뽐내며 LG 타선의 숨통을 끊었다. 1회 홍창기의 안타성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 미끄러지면서 공을 건져냈다.
2회에도 구본혁의 타구가 우중간으로 향했는데, 정수빈이 한참을 내려와 팔을 쭉 뻗어 캐치했다. 보는 이들 모두 벌떡 일으킬 정도로 소름 돋는 장면을 연출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공격과 수비에서 만점 활약을 한 정수빈은 준PO MVP로 우뚝 섰다.
정수빈은 자신의 다이빙캐치 선택과 성공에 대해 “홍창기는 좌측으로 타구가 나온다. 미리 준비했다. 다이빙 캐치도 생각했다. 스타트가 잘 됐다”며 “뒤로 빠지면 더 큰 위기가 온다. 그래도 1회였고 뒤에 찬스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큰 경기는 분위기 싸움이라 내주지 않으려고 뛰어 들었다. 정규시즌에서도 뛰어 들었을 거다. 어려운 타구였는데 잘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정수빈은 PS활약으로 FA계약 후 부진도 털어냈다. 그는 “올시즌은 못했다. 그래도 언제 어디서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9월부터는 팀에 도움이 됐다. 아무리 못해도 항상 기회는 온다. 기회를 잘 살리려고 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PO에서 만날 삼성에 대해선 “삼성은 투타 밸런스가 정말 좋다. 우리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약세다. 단기전은 누가 더 집중력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 분위기 싸움이다. 단기전에서는 분위기를 선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사실 두산과 LG 맞대결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특히 마운드 높이가 낮았다. 이미 외국인 ‘원투 펀치’ 아리엘 미란다와 워커 로켓 없이 시리즈를 치러야 했고, 시즌 말미부터 와일드카드 결정전(WC)까지 총력전을 벌인 탓에 선발과 불펜 모두 피로가 극에 달했다. 최원준 곽빈 김민규 모두 사흘 휴식 후 등판을 감행했고, 불펜 필승조도 잦은 등판과 멀티 이닝 소화로 힘이 빠진 상태였다. 반면 LG는 완전체 마운드가 충분한 휴식 후 출격을 마쳤다.
그러나 두산은 불펜 총력전으로 PO 티켓을 따냈다. 3차전 2회부터 등판한 필승조 조기 투입 카드가 통했다. 단기전 특성상, 상대에게 분위기를 넘겨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1회 선취점을 내고도 김민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과감하게 이영하를 투입했다. 경기 전에도 김태형 감독은 “김민규를 1~2이닝 정도 생각하고 있다. 이영하는 그 뒤에 붙이려고 준비시켰다”며 경기 초반부터 마운드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벤치의 과감한 결단은 주효했고, 팀 승리로 직결됐다.
|
올해 PS에서 선취점을 따낸 팀은 모두 승리했다. WC 1차전 키움이, 2차전 두산이 먼저 리드를 가져갔고 승리했다. 준PO에서도 1차전 두산이, 2차전은 LG가 유리한 고지를 밟은 뒤 승리를 확정했다. 이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1회부터 선취점을 뽑아낸 타선은 3회 페르난데스의 투런포, 4회 정수빈의 적시타, 5회 김재환의 1타점, 6회 2사 만루 때 정수빈의 싹쓸이 3루타를 묶어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승리로 두산은 준PO 1차전 승리팀의 다음 라운드 진출 100% 확률도 지켜냈다. 3전 2선승제로 치러진 역대 17차례 준PO에서 1차전 승리팀 모두 PO에 올랐다. 두산도 1차전을 따내 스윕을 노렸지만, 2차전 LG에 대패하면서 사상 첫 준PO 1차전 승리팀 탈락 위기에 놓였다. LG의 분위기가 물이 오른 탓에 역스윕 위기도 현실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투타 완벽한 조화 속에 3차전을 승리로 거둔 두산이다.
|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 마운드 운용,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치열한 승부 탓에 선수들 모두 지친 상황이다.
최원준은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만 그런 상황이 아니다. 불펜 투수들도, 야수들도 모두 지쳤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영하 역시 “PS는 페넌트레이스와 다르다. 힘들긴 하지만, 점수를 안 주려고 집중해서 던지고 있다”며 힘든 시기를 집중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증언했다. 젖먹던 힘까지 쥐어짠 두산은 위기에서 벗어났고, 이제 또다른 가을 기적을 쓰기 위해 대구로 향한다.
miru0424@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