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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뉴질랜드와 여자 축구A대표팀 평가전 당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골때녀 제작진(왼쪽 두 번째).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대중의 사랑을 넘어 축구계에도 큰 울림을 안겨주며 최근 대한축구협회(KFA)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 제작진이 최근 불거진 조작 의혹을 인정했다.

‘골때녀’ 제작진은 24일 입장문을 내고 ‘방송 과정에서 편집 순서를 일부 뒤바꾸어 시청자께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경기 결과 및 최종 스코어는 방송된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일부 회차에서 편집 순서를 실제 시간순서와 다르게 방송했다’며 ‘제작진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라고 덧붙였다.

앞서 각종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지난 22일 방송된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경기 내용이 실제 경기 흐름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방송에서 구척장신이 전반 3골을 터뜨리며 3-0으로 종료됐고, 후반들어 원더우먼 송소희가 연이어 두 골을 넣었다. 그러나 구척장신이 추가골을 넣으면서 4-2가 됐고, 다시 원더우먼이 한 골을 따라붙어 4-3 스코어가 되는 등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지속했다. 이후 구척장신 차수민의 쐐기골에 이어 골키퍼 아이린이 찬 공이 그대로 원더우먼 골문을 저격, 구척장신이 원더우먼을 6-3으로 이기며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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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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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그러나 방송 이후 커뮤니티에서는 ‘골때녀 조작의혹’으로 떠들썩했다. 구척장신이 원더우먼을 상대로 전반에만 이미 5골을 넣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근거로 네티즌은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스코어 보드에 ‘4-0’이라고 적힌 장면을 꺼냈다. 방송에선 후반에 4-3 상황이나 화이트보드엔 4-0으로 적혀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선수가 마신 물병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한 점과 관중석에서 경기를 본 일부 사람의 위치가 수시로 달랐던 점 등 누가 봐도 조작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골때녀’ 제작진은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했다.

제작진의 사과에도 시청자의 비난은 거세다. 골때녀는 예능인, 배우, 모델 등 각계에서 활동하는 여자 셀럽이 서툴지만 진정성이 담긴 동료애와 축구에 대한 배움의 자세로 사투를 벌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단순히 예능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진중한 자세 덕분에 성장물이 됐고, 어느덧 다큐멘터리처럼 거듭나 대중의 마음을 울렸다. 최근 축구계에서 “웬만한 남자 선수보다 열정과 의지가 낫더라”며 “팀마다 골때녀를 단체로 시청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실제 일부 K리그 팀이 골때녀 방송을 선수들에게 팀 미팅 때 보여줄 정도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본보기가 됐다.

그런 가운데 제작진이 이제까지 ‘예능적 재미보다 스포츠 진정성이 중요한 가치였음을 몰랐다’는 뉘앙스로 해명한 건 스스로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무엇보다 소재의 본질을 재미 요소로 삼는 게 예능이다. 스포츠는 최근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활용되는데 ‘공정과 정의’라는 기본 가치에서 비롯됐다. 그 속에서 참재미를 찾는 게 제작진과 출연진의 몫이다. 골때녀는 2002 한·일월드컵 스타가 사령탑으로 대거 나서고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각계 셀럽이 어우러져 ‘진정성 100%’로 승승장구했다.

골때녀에 출연하는 이천수 KFA 사회공헌위원장의 아내 심하은 씨도 “우리 팀의 (한)채아 언니처럼 연예계에서 한참 활동하는 분 모두 모든 스케줄이 축구 훈련, 경기에 맞춰져 있다”면서 이 프로그램으로 전체적인 삶이 달라졌음을 얘기하기도 했다.

골때녀 제작진의 조작 편집은 모든 출연진의 땀의 가치를 훼손시킨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이들에게 진심을 느끼며 바라본 시청자, 축구인을 기만한 행동으로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다. 한 축구인은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이런 것을 조작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4-0이든, 5-0이든 경기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건데 제작진이 너무나 생각이 짧은 것 같다”며 “이제부터 조작 안 하겠다고 해도 다시 보고 싶겠느냐”고 씁쓸하게 웃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