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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가드는 관중을 즐겁게 하고 센터는 감독을 즐겁게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가드의 화려함과 센터의 우직함을 표현한 얘기다. 이제는 아니다. 뛰어난 가드는 관중은 물론 감독도 즐겁게 만든다. 빠른 농구가 대세가 되면서 공격 시작점인 가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뛰어난 가드 없이는 강팀이 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위표가 이를 증명한다. 1위 SK부터 2위 KT, 3위 현대모비스, 4위 KGC까지 특급 가드를 앞세워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SK는 베테랑 김선형(34)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듯 두 번째 전성기를 펼친다. KT는 허훈(27), 현대모비스는 서명진(23), KGC는 변준형(26)이 팀을 이끈다. 네 선수 모두 번개 같은 스피드와 정확한 슈팅을 앞세워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데 능하다. 더불어 절묘한 패스로 동료의 득점을 창출해낸다.
외국인선수의 기량을 살리는 것도 가드의 몫이다. SK 자밀 워니, KT 캐디 라렌, 현대모비스 라숀 토마스, KGC 오마리 스펠맨은 동료 가드가 활약할 때 날개를 단다. 가드와 외국인선수의 2대2 플레이가 팀 오펜스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볼을 운반하고 외국인선수에게 패스만 하는 수동적인 가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공격에서 비중만 큰 것도 아니다. 뛰어난 가드가 많은 만큼 이들을 저지하는 역할도 가드가 한다. 지난 2일 변준형은 원주 DB와 경기에서 허웅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이날 변준형은 16점 12어시스트로 더블더블에 성공한 것은 물론, 경기 내내 수비로도 허웅을 괴롭혔다. 변준형의 수비에 허웅은 야투율 38%에 그쳤다.
당연히 사령탑들도 가드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팀을 구성하는 테마도 가드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KT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허훈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베테랑 김동옥을 영입했다. 현대모비스는 201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서명진을 두고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해 성공을 향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 시즌 입단한 신인 이우석도 이따금씩 포인트가드를 맡는다. KGC는 이번 시즌 슈팅 가드였던 변준형을 포인트가드로 이동시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삼성이 트레이드로 김시래를 데려온 것도 가드 없이는 올라설 수 없다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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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열풍도 거세다. 고양 오리온 가드 이정현은 입단 당시부터 붙었던 ‘완성형’이라는 칭호를 증명하고 있다. 돌파가 뛰어난 것은 물론 오른손·왼손을 자유롭게 활용해 돌파 후 득점을 만든다. 슈팅 능력도 갖춘 만큼 공격만 놓고 보면 부족함을 찾기 힘들다. 물론 과제도 있다. 김선형, 변준형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아직 완전한 포인트가드라고 볼 수는 없다. 이정현이 리딩에서도 완성도를 더할 때 오리온의 전력도 상승할 것이다.
과거에는 포인트가드의 덕목으로 이타심이 꼽히곤 했다. ‘선 패스 후 슈팅’ 마인드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현대 농구에서 포인트가드는 이타적인 플레이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스스로 득점을 창출해 상대 수비를 무너뜨려야 팀 전체가 살아난다. 주전 가드의 활약에 따라 팀 운명이 결정된다.
가드 열풍의 원조이자 맏형 김선형은 “최근 좋은 가드들이 정말 많이 나왔다. 동기부여가 된다”며 “은퇴할 때까지 어린 선수들과 강하게 부딪혀 보겠다. 가드가 곧 에이스 아닌가. 라이벌 의식도 있다. 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고 가드 전성시대에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