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요리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장안의 화제다. 사실 필자는 예능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그런데 주변에서 모두들 그 얘기를 하니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서 시청을 시작했다.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틀에 걸쳐 10화까지 한번에 달렸다.
이미 20년 이상 자신만의 색깔로 요리를 하며 이를 보조해주는 ‘자신만의 팀’을 이끌었던 백셰프들. 이들이 모인 팀A는 서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다른 팀원들이 움직여주기를 바랐다. 반면 이를 상대하는 흑셰프 팀A는 구성원들의 장점을 재빨리 파악해 할 일을 배정하며 체계적으로 미션을 수행했다. 자신의 색깔을 내고 싶어하는 것은 동일했지만, 팀승리를 위해 이를 빨리 조율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했다. 결국 결과는 흑셰프 팀A의 승리. 박수가 저절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필자는 예전 칼럼에서 초등학생 어린이의 경우 무술도관에서 호신술을 배우기 보다는 축구나 농구 등 단체 스포츠를 즐기도록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전력으로 달리기, 넘어질 때 안전하게 넘어지는 낙법, 주변 상황을 한 번에 파악하는 넓은 시야 등 호신술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즐겁게 놀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붙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런 단체 스포츠를 하면서 어린이들은 자신이 팀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하는지 스스로 느끼고 노력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는 호신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린이들이 아빠 혹은 엄마의 손을 잡고 필자의 무술도관에 와서 호신술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항상 함께 배울 친구가 있는지 물어본다. 필자가 수강생을 더 늘리려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친구를 데리고 와서 두 명, 혹은 세 명이 함께 배우게 되면 첫 기초는 똑같은 걸 가르치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찾아 호신 상황이 됐을 때 역할 분담을 해 맞설 수 있도록 지도한다.
“철수가 제일 기술을 잘 쓰고, 길동이가 힘이 제일 좋으니 둘이서 못된 형을 붙잡고 있는 동안 제일 달리기를 잘 하는 민수가 뛰어가서 주변 어른들께 위험 상황을 알리는 거야”라는 식이다.
필자도 그렇지만, 지금 40-50대라면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동네 못된 형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친구가 선생님 혹은 어른들에게 뛰어가 사실을 알려 구해줬던 일. 그 못된 형은 어른들에게 붙잡혀 크게 혼이 났고, 친구와는 더욱 돈독해졌던 경험.
물론 십대 청소년이나 성인 수련생들에게도 이런 ‘단체 대응’을 위한 수련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는 언젠가부터 ‘일대일 싸움’ 같은 이미지가 자리잡혀 있다. 격투기 등이 크게 유행하며 만들어진 ‘멋진’ 이미지 때문이다.
칼럼에서도 몇 번이나 밝혔지만, ‘일대일 맞대결’, ‘정정당당한 승부’ 같은 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다. 판타지를 눈 앞에서 현실처럼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재밌는 것이다. 길거리 싸움에도 회사 내에서의 경쟁에도 정정당당, 일대일 같은 건 없다. 강한 상대를 앞에 두고 혼자 맞설 수 없다면, 동료와 힘을 합쳐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다수가 한 사람을 제압하는 것’은 별로라고? 그럼 어벤저스가 모두 힘을 합쳐 타노스를 상대했던 것에는 왜 열광했는가.
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