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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선수들이 지난달 30일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끝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I조 최종전에서 조호르 다룰 탁짐에 1-2 패배,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4승2무4패, 9골 11실점.

2022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 나선 K리그 4개 팀(울산 현대·전북 현대·대구FC·전남 드래곤즈)이 동남아시아 팀과 겨뤄 떠안은 성적표다. 아시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K리그가 ‘동남아의 습격’에 휘청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일본 J리그는 동남아 상대 6승2무를 기록하며 대조를 이룬다.

◇ACL 강자 울산도 16강 진출 실패

ACL 2회 우승(2012 2020)을 자랑하는 울산은 지난 30일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과 조별리그 I조 최종전에서 1-2로 져, 조 3위(승점 10)로 밀려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울산은 조 1위를 두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한 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에 1승1무 우위를 보였으나, 조호르와 두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1-2 충격패했다.

같은 날 전남도 빠툼 유나이티드(태국)와 G조 최종전에서 졸전 끝에 0-0으로 비기며 역시 조 3위(승점 8)에 그쳐 대회를 마감했다. 전남은 한 수 아래로 여긴 빠툼, 유나이티드 시티(필리핀) 두 동남아 팀과 한 조에 묶여 16강행이 유력해 보였으나, 빠툼과 조별리그 1차전부터 0-2 완패하며 흔들렸다.

16강에 오른 F조의 대구, H조의 전북도 동남아 팀에 고전한 건 마찬가지다. 대구는 라이언 시티(싱가포르)와 첫판에서 0-3 대패했다가 최종전에서 2-1 신승했다. 전북은 대승이 기대됐던 호앙아인 잘라이(베트남)와 두 차례 맞대결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각각 1-0 승,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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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휘청거린 K리그, 승승장구 J리그

애초 조별리그가 동남아 국가(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에서 모두 열리면서 고온다습한 현지 날씨가 장애물로 떠올랐다. 지난해도 동남아 중립국에서 ACL 조별리그가 진행됐지만, 당시엔 한국도 더워지는 6월이었다. 올해는 선수들이 비교적 쌀쌀한 날씨에서 시즌 초반을 보내다가 무더운 나라로 이동해 사,나흘 간격으로 경기를 치러 체력적인 어려움이 우려 요소였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 J리그 팀의 행보를 보면 이 역시 핑곗거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ACL에 나선 J리그 4개 팀은 동남아 팀을 상대로 6승2무,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K리그 팀이 ‘동남아 늪’에 빠진 실질적 이유로는 안이한 상대 분석과 경기 태도가 우선 거론된다. 과거 부리람, 무앙통 등 태국 빅클럽이 종종 이변을 일으키며 동남아 팀의 가능성을 증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엔 동남아 각 리그 우승권 1~2개 팀 수준이 크게 진보했다. 익명을 요구, 동남아 리그를 경험한 K리거 A는 “솔직히 동남아 팀, 선수를 처음 접할 때 ‘한, 두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는 건 맞다. 그런데 요즘 동남아 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돈 많은 클럽 중심으로 세계적 선수를 영입하면서 자국 선수 수준도 꽤 높아졌다”고 말했다.

◇동남아 축구열기, 유럽 못지않아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부하는 울산을 두 번이나 누른 조호르만 해도 조호르주 왕세자 툰구 이스마일 술탄 이브라힘이 구단주를 맡으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울산을 상대로 골 맛을 본 페르난도 포레스티에리(이탈리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이탈리아 세리에A 등 빅리그를 경험했다. 레안드로 벨라스퀘스(아르헨티나)도 자국 명문 벨레스 사르스필드 출신이고, 베르손(브라질)은 수원 삼성 등 K리그 유경험자다.

김도훈 감독을 수장으로 앉히고, 전 국가대표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수혈한 라이언 시티도 연간 250억 원 안팎 예산을 가동한다. 동남아에 정통한 한 에이전시 대표는 “동남아는 유럽 못지않은 엄청난 축구 열기를 자랑한다. 중계권료가 대폭 늘어나면서 수준급 선수 수급이 활발해졌고, 중동처럼 갑부 구단주가 부임해 팀을 운영하며 과거 발목을 잡은 승부조작 등이 거의 사라졌다. 시설부터 운영까지, 유럽 시스템을 따라가는 팀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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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연합뉴스

◇K리그, 성장한 동남아 상대 분석 부족

동남아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C 감독은 “과거 동남아 팀은 수비 전술 이해 없이 공격만 했다. 그런데 최근 좋은 외인 지도자, 선수를 영입하면서 공수 밸런스가 매우 좋아졌다”고 말했다. 과거 중국 슈퍼리그가 광저우 등 부자 구단을 중심으로 특급 선수 영입으로 자국 선수 수준을 높인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반면 K리그 팀은 사전 동남아 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모든 팀이 이들을 상대할 때 수비 라인이 벌어지고, 마크해야 할 외인 공격수에게 한 방을 얻어맞는 장면이 속출했다.

취재에 응한 다수 관계자 모두 “조호르가 올 시즌 K리그 유일 무패를 자랑한 울산을 두 번이나 잡은 건 ‘동남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와 같다”고 입을 모았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