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홍명보 감독 \'웃음꽃 활짝\'
울산현대 선수들이 16일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파이널A 강원FC와 경기 승리 후 홍명보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춘천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춘천=김용일기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리고 3년여 행정가의 삶을 살며 현장과 거리를 두고 시야를 넓혔다. 다시 찾아온 기회. ‘감독 홍명보’는 실패를 벗 삼아 전략과 소통 모두 더욱더 유연해진 지도자로 거듭났다. 마침내 ‘월드컵 실패 악몽’을 딛고 ‘챔피언 사령탑’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홍명보 감독이 울산 현대를 이끌고 지도자 커리어 첫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홍 감독의 울산은 16일 강원도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2’ 37라운드 강원FC와 원정 경기에서 0-1로 뒤진 후반 막판 터진 엄원상, 마틴 아담의 릴레이 포로 2-1 역전승했다. 승점 76(22승10무5패)를 확보한 울산은 오는 23일 시즌 최종전(제주 유나이티드와 홈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2위 전북 현대 추격을 따돌리며 자력 우승을 확정했다. 무려 17년 만에 리그 정상이다.

2012 런던 하계올림픽 남자축구 한국-일본
홍명보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 시절이던 지난 2012년 8월10일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2012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동메달을 딴 후 헹가래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단

2002 한·일월드컵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4강 신화를 이끄는 등 현역 시절 ‘아시아 최고 리베로’로 활약한 홍 감독은 은퇴 이후 2005년 국가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연령별 대표 감독으로 경험치를 쌓았다. ‘스타 출신 지도자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승승장구했다. 2009년 이집트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에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U-23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 축구에 사상 첫 동메달을 안겼다.

그러다가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자의반 타의반’ 다급하게 지휘봉을 잡았다가 조별리그에서 탈락, 첫 실패를 경험했다. 월드컵 실패로만 귀결된 게 아니다. 선수 선발 논란부터 근거 없는 괴소문, 일부 누리꾼의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접하며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이후 중국 리그에서 잠시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대한축구협회(KFA) 전무이사직을 맡으며 행정가로 변신했다. 선수부터 지도자까지 축구 인생 내내 승부 세계에 놓이며 ‘한쪽’만 바라본 그의 시각은 한층 넓어졌다.

홍명보 감독
홍 감독이 A대표팀 사령탑 시절이던 지난 2014년 6월27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벨기에와 경기에서 패한 두 ㅣ울음을 터뜨린 손흥민을 안아주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홍 감독은 2020년 말 김도훈 감독과 이별한 울산의 새 사령탑 후보로 일찌감치 언급됐다. 상처가 컸던 그가 ‘현장 컴백’을 결심한 건 녹색 잔디 위에서 제자들과 다시 호흡해보고 싶은 지도자로 순수한 열정이었다.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실패를 거울삼아 울산의 리모델링 추진했다.

대표팀 시절 사제 인연을 맺은 이청용에게 주장 완장을 맡긴 뒤 내부 소통을 끌어냈다. 지난해까지 3년 연달아 전북에 역전 우승을 허용한 내부의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건 ‘팀에 대한 로열티’와 ‘책임감’이다. 그는 핵심 외인 선수여도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가차 없이 팀에서 배제했다. 또 A매치 기간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고 훈련에 충실한 선수를 다음 경기에 중용하는 등 주전과 비주전 요원의 간극을 좁히며 ‘원 팀’으로 거듭나는 데 애썼다. 그 결과 지난해 라이벌 전북과 전 대회 2승1무2패로 균형을 이루더니 올 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 0-1로 뒤지다가 후반 추가 시간 아담의 연속포로 2-1 역전극을 펼치는 등 강력한 뒷심을 뽐냈다. 울산이 홍 감독 체제에서 가장 달라진 부분이다. 우승을 확정한 강원전도 막판 역전극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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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감독이 지난 8일 전북 현대와 K리그1 35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 극적인 역전골이 터지자 기뻐하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또 홍 감독은 울산을 통해 ‘매니저형 지도자’로도 거듭났다. 단순히 1군 전술, 결과에 몰두하지 않고 선수단과 프런트, 팬이 하나가 돼 모든 면에서 꾸준하게, 으뜸이 되는 ‘지속 발전 리딩 구단’을 강조했다. 구단 유스 출신과 유망주를 1군에 합류시켜 경험치를 쌓게 했고, 이례적으로 구단 영상팀에 라커룸을 개방해 리얼한 현장 상황을 공유하게 했다. 울산은 이를 통해 자체 다큐멘터리 ‘푸른파도’를 론칭, 팬의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팬 친화적인 구단에 수여하는 ‘팬 프렌들리 클럽상’을 매년 쓸어담고 있다. 악몽의 터널을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우승 지도자’로 거듭난 홍 감독은 내년 울산을 이끌고 더 나은 진취적인 미래를 그리게 됐다.

더불어 ‘홍명보 10년 주기설’은 2022년에도 통했다. 1992년이 시작이다. 그해 포항에서 프로로 데뷔해 우승은 물론, K리그 베스트11과 MVP를 석권했다. 10년 뒤인 2002년엔 한일월드컵 주장으로 4강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2년엔 런던올림픽 대표팀 수장으로 동메달 신화를 달성했다. 다시 시곗바늘이 10년을 지나 2022년이 됐고 10월16일 춘천 땅에서 울산의 챔피언을 이끌게 됐다.

홍 감독은 우승 직후 “나의 코치들과 선수들이 멋진 일을 이뤘다. 올 시즌 시작부터 1위를 지킨 건 대단한 일”이라며 “앞으로 울산이 모든 면에서 K리그 선도하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또 ‘10년 주기설’엔 “이제 2032년에 뭐를 할까 생각 중”이라고 농담하며 웃더니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왔는데 선수에게 감사할 뿐이다. 올 한해도 열심히 뛰었는데, 우리 울산 선수들이 좋은 축구를 표현해 감독으로 더더욱 기쁘다”고 감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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