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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일산=김용일기자] 지난 11일 경기도 일산에서 끝난 ‘캄보디아 김연아’ 스롱 피아비(33·블루원리조트)와 ‘당구여제’ 김가영(40·하나카드)의 여자 프로당구 LPBA 월드챔피언십 결승전. 시즌 랭킹 1~2위에 매겨진 ‘최고 대 최고’의 대결은 3시간10분에 걸친 명승부로 이어졌다. 파이널세트(7세트)까지 펼쳐진 가운데 피아비가 7-10으로 뒤지다가 10이닝에 뱅크샷(2점)을 포함해 연속 4점을 기록, 11-10 역전승을 거두면서 김가영을 세트스코어 4-3으로 따돌렸다. 승자와 패자는 나뉘었지만 LPBA 최고수다운 명승부에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나 ‘옥에 티’가 있었다. 프로 무대에서 나와서는 안 될 어처구니없는 ‘오구파울 판정 논란’ 때문이다. 5세트 김가영이 8-4로 앞선 가운데 3이닝 공격에서 타임파울을 범했다. 피아비가 틈을 놓치지 않고 8-8 동점을 만들었다. 그는 최초 상대의 공을 때리는 ‘오구 파울’을 범할 뻔했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피아비의 공’을 알려주는 목소리가 나왔고, 피아비도 당황한 표정을 지은 뒤 서둘러 자기 공을 쳤다.
장재홍 프로당구협회(PBA) 사무국장은 “피아비가 상대 공을 치려고 하니까 (관중석에 있는) 블루원 쪽에서 (피아비의 공을 의미하는’) ‘옐로’, ‘옐로’라는 말이 나왔다. 주위 사람이 들릴 정도였다”고 상황을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심판을 포함해 당시 아무도 이 상황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다.
원인은 규정 미비에 있다. 당구 종목에서 오구파울 상황을 주위에서 알려주는 건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세계캐롬연맹(UMB) 심판규정 2항에 ‘심판은 선수가 경기 중 범할 실수에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 명시적으로 금지된다. 이와 별개로 심판은 이닝이나 득점이 진행되는 도중 선수의 플레이 볼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없다’고, 4항에 ‘심판은 외부나 선수 본인의 무단 간섭이 발생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각각 명시돼 있다.
오구 상황에 대해 외부에서 간섭한다면 심판이 제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한당구연맹(KBF)도 UMB 심판매뉴얼을 따른다. 심지어 경기규칙서 5조 2항을 보면 ‘지도자도 경기 중 선수에게 코치할 수 없으며 휴식 시간 혹은 작전타임에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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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A는 정관과 규약 외에 경기 규칙서는 매 투어 대회요강에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오구파울 관련 세부 규정은 없다. 장 국장은 “팀리그에서는 오구 파울 상황에 벤치에서 동료가 알려줄 수 있다. 개인 투어는 알려줄 수 없는 기본적으로 맞다. 다만 이번에 관중석에서 나온 얘기여서 애매하다. 심판위원장과 경기위원장도 제도 보완을 두고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PBA 측 해명에도 규정 위반 소지는 있다. 이번 월드챔피언십 경기 규칙 5항엔 ‘경기 진행 중 선수 상호간 대화는 엄격히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피아비에게 ‘옐로’를 외친 건 여러 명이었는데 팀 동료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5세트를 김가영이 11-9로 이겼지만, 이 경기는 7세트까지 타이트한 승부가 펼쳐졌다. 당구는 정신적, 심리적 요소가 크게 개입한다. 전체 흐름을 볼 때 5세트 당시 피아비가 관중 도움 없이 오구파울을 범했다면 6,7세트에 어떤 경기를 펼쳤을지 모른다. 장 국장도 “그 상황이 7세트였다면 어쩔뻔했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김가영은 당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경기 직후 본지와 통화한 그는 “관중석에서 말이 나왔고, 누가 했는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았느냐. 그것과 관련해서 명확한 위반 규정을 나 역시 모르고 있었기에 어필하지 않았다. 또 기분은 안 좋지만 중요한 승부처에 흔들리지 않고 내 플레이를 하는 데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피아비도 관련 규정을 몰랐다고 인정했다. 그는 ‘자기 공인지 알고 쳤느냐, 주위에서 알려줬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뒤에서 알려줘서 알았다. 그게 규정 위반인 줄 몰랐다”고 했다.
프로당구는 어느덧 출범 네 번째 시즌을 마쳤지만 곳곳에서 미숙한 행정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오구파울 논란은 자칫 안 좋은 선례로 남아 일부 선수가 악용할 소지도 있다. 세부 규정 마련은 필수 보완과제가 됐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