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승부조작범 기습 사면 논란으로 홍역을 앓은 정 회장은 사면안을 주도한 일부 고위 간부를 포함해 이사진이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좌불안석’에 놓였다.
KFA 역사상 최대 헛발질로 불리는 이번 징계 축구인 기습 사면 및 철회 사태는 국정조사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사태 수습 최종 책임자인 정 회장을 겨냥한 비판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정 회장은 KFA는 물론 자신이 운영중인 현대산업개발 주요 실무자를 통해 거취와 관련한 여론 수렴에 나선 상태다. KFA 한 고위 관계자는 “사태가 워낙 악화일로를 걷는 만큼 회장께서 (거취에) 고심이 큰 것으로 안다”며 “다만 지금 당장 사퇴하는 것도 장기간 KFA를 이끈 수장으로 도리가 아니라는 것에 조언을 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쇄신책 없이 사퇴 카드 만지작? 또다른 ‘무책임 비판’ 우려
정 회장은 ‘이사진 전원 사퇴’ 결심에도 축구계 뿐 아니라 정치권 등에서 강한 압력이 들어오면서 사퇴에 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사진 사퇴로 일부 업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주요 현안을 책임질 인사에만 참여한 뒤 물러나는 계획도 고려 중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KFA를 떠나는 게 일련의 사태와 본질적인 문제를 정리하는 최상의 답은 아니다. 리더라면 사태를 적극적으로 수습하고 미래지향적인 쇄신책을 내놔야 한다. 정 회장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사퇴 카드를 꺼냈다가 ‘무책임하다’는 또다른 비판과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KFA 내부에서 우려하는 건 A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관련한 것이다. 한국 축구 구조상 대표팀이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린다.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 지휘봉을 잡는 데 전면에 나섰던 정 회장이 수장직을 내려놓을 경우 당장 클린스만호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KFA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코치진 지원 문제부터 여러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8개월여 앞둔 아시안컵 본선을 대비하는 A대표팀이 어수선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밖에 정 회장과 관련한 스폰서십 등 현안을 매끄럽게 이어가면서 대처할 수장을 빠르게 찾는 건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정 회장은 우선 이사진에 포함된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의 사퇴는 반려할 것으로 알려졌다.
◇KFA 내부부터 ‘NO’ 외치는 고위 간부+귀를 여는 조직 희망
정 회장이 사퇴 카드를 접고 수습에 주력했을 때 우선돼야 할 건 개혁 의지가 담긴 적극적인 인사 개편이다. 실무 최고 책임자인 전무이사, 사무총장 투톱 체제부터 고민해야 한다. 전무이사와 사무총장은 협회 살림살이를 책임지면서 건설적으로 견제 구실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몽규 3기 체제에서는 모두 ‘예스맨’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름값을 앞세운 유명 경기인이나 행정가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각계로 넓혀 축구와 산업 트렌드, 민심을 고르게 연결할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 적어도 정 회장에게 ‘노(No)’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실무 부서로 좁히면 홍보와 마케팅 부서를 다시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KFA내부서부터 나온다. 정몽규 3기 체제에서는 별도 홍보팀을 두지 않았다. 소통 창구를 무너뜨린 것과 다름이 없다. 이번 코미디 같은 사면 사태는 ‘귀를 닫은 조직’의 최후와 다름이 없었다.
KFA는 타 종목과 비교해서 미디어와 팬의 커다란 관심을 받는 것을 알면서도 최근 장기간 주요 비판 목소리에 ‘무대응 전략’을 고수해왔다. 이번 사면 사태도 이사회 한 달 여전부터 안건을 물밑에서 추진했는데, 사면을 요구하는 일부 축구인과 배후 세력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일찌감치 전문적인 홍보 책임자와 실무 부서를 통해 세상의 목소리를 미리 직·간접적으로 접했다면 조정 여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KFA의 ‘무대응 전략’은 최악의 사태를 맞닥뜨리고 민심을 잃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KFA 한 관계자는 “일련의 사태는 홍보팀 부재 장기화가 근본적 원인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서 홍보팀장 등을 믿고 맡길 사람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축구계 곳곳에서는 정 회장이 현 사태를 정리하고 KFA 쇄신을 이끌 각계 전문가가 모인 협의체를 구성하는 형식으로 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처받은 팬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하고 남은 임기의 청사진을 내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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