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기자] “손님들이 술값 더 오르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거 듣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더 올리면 이제 안 올 텐데”

서울 문래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출고가 올리는 거 정말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금도 비싸다고 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출고가가 오르면 판매하는 술값도 올려야 하는데 진짜 이러다가 손님들 발길 끊길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오비맥주 인상에 이어 하이트진로도 참이슬 후레쉬와 오리지널 출고가를 6.95% 인상했다. 주류사들이 일제히 출고가를 인상함에 따라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주, 맥주 가격도 인상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현재 식당에서 판매되는 소주와 맥주의 가격은 5000~6000원대지만 출고가 인상으로 곧 6000원대가 일반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엔데믹과 함께 매출 회복을 기대했지만 물가 인상이 소비 침체로 이어지면서 다시 발목을 잡은 형국이다. 특히 주류 출고가 인상이 결정되면서 영세업자들은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 ‘서민 술’이 사라지고 있다…안줏값과 맞먹는 소맥 1만 5000원 시대

소주 맥주가 ‘서민 술’이라는 말도 옛말이 됐다. 포장마차에서 강소주로 하루를 달래던 직장인들의 모습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소주, 맥주 한 병 5000원 시대가 되면서 마음 놓고 시키기엔 술은 이제 부담으로 다가온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주류를 판매해야 하는 영세업자들도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손님들은 지금 4000원(소줏값)도 비싸다고 아우성”이라며 “강남권 같은 경우는 7000~8000원에 팔아도 괜찮지만, 여기처럼 동네 식당에서 소주를 6000원에 팔면 반발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출고가가 올라도 어쩔 수 없이 다 감내할 수밖에 없다”며 “손님들 안 오는 게 더 싫다”고 푸념했다.

앞서 오비맥주는 지난달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9% 올린 바 있다. 지난 9일 하이트진로까지 출고가를 인상하면서 식당에서 ‘소맥’(소주+맥주) 가격은 1만5000원~20000원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도매상별 중간 이윤이나 지역별 운반비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보통 참이슬 30병 기준 인상 전 가격이 5만7800원으로 병당 1926원이다. 병당 보통 5000원에 팔면 자영업자들의 경우 약 3000원가량의 이윤을 남기게 되는데 출고가가 약 7% 인상되면 이윤이 2000원 정도로 줄어든다.

주류 판매로 이윤이 남아도 각 식자재, 인건비 인상 등을 반영하면 영세업자들도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 주류사 “버틸 만큼 버텼다”…더 이상 견딜 여력 없어

하이트진로는 이번 가격 조정에 대해 소주 주원료인 주정 가격 10% 상승과 병 가격이 20%대로 상승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원재룟값이 이미 몇차례 인상됐지만 소비자 물가를 고려해 가격 인상을 보류하고 있었던 상황”이라며 “하지만 이제 원재료뿐만 아니라 병과 뚜껑, 물류비, 인건비 등이 모두 오르면서 인상이 불가피해진 면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내 주류사 대부분이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테라는 호주, 켈리는 덴마크에서 수입하고 있다. 오비맥주도 원재료 대부분을 호주, 벨기에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특히 러우전쟁으로 맥아값이 급등하면서 홉의 가격도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국산 맥주는 원재료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며 “맥아의 국제 시세가 48% 이상 급등했고, 수입에 따른 달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가도 많이 오른 상황이라 여러 가지가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류업체인 롯데칠성음료는 “주류 출고가 인상을 검토 중인 것은 사실이나,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밝혔다.

◇주세 개편 작업 착수했다던 ‘정부’…“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이 가운데 소주, 위스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주세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고 알렸던 정부 당국은 이제 검토 단계일 뿐 구체적인 방안은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기준판매비율 제도는 수입 주류와 국내 주류 간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오면서 시작됐다. 수입 주류는 수입 신고가를, 국산 주류는 제조원가·판매관리비 등을 더한 금액을 과세표준으로 하기 때문에 국산 주류의 세 부담이 더 크다는 것이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기준판매율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이제 내부 검토를 시작한 상황이고, 국회 통과, 업계 협의와 같은 절차들을 하나하나 넘겨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에 따라 개편 작업 또한 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 관계자도 “내부적으로 계속 검토하고 있다. 다만 협의체들과 만나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며 “국세청도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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