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울산=김용일기자] “다른 사람은 내가 매일 화내는 줄 아는데, 선수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느라 바쁘다. 그런 건 재미 없으니까 안 나오더라.”

프로축구 ‘명가’ 울산 현대의 사상 첫 K리그1 2연패를 지휘한 홍명보(54) 감독은 21일 울산 동구에 있는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난달 29일 대구FC와 홈경기에서 2-0 완승, 리그 잔여 3경기를 남겨두고 조기 우승을 확정한 그는 “17년 만에 우승한 지난해와 비교해서 감흥이 적을 수 있지만 구단 새 역사다. 남은 경기를 선수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반겼다.

◇‘다사다난’ 리더십 공부 많이 했죠

울산은 지난해 홍 감독 체제에서 강력한 ‘팀 스피릿’을 장착, 매번 역전 우승을 허용한 전북 현대 징크스를 깨고 17년 만에 정상에 섰다. ‘우승 열매’는 선수단과 코치진 간의 신뢰를 끌어올리며 더 단단한 팀 뿌리를 만들었다. 올 시즌 초반 6연승 2회, 5연승 1회로 독보적인 선두를 달렸다.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타이틀 방어’는 역시나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 6월 소셜미디어(SNS)상에서 일부 주력 선수가 인종차별 발언 논란에 휘말린 것을 시작으로 예상치 못한 구설이 연달아 터졌다. 팀은 휘청거렸다. 또 여름 이적 시장에 핵심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알 아인)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리그로 이적, 대체자 수급에 실패하며 전력 공백이 발생했다. 울산은 8월 이후 10월 A매치 브레이크까지 단 2승(5무2패)으로 주춤했다.

위기 극복 열쇠는 홍 감독 특유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한국 축구 대표 아이콘인 그 역시 “리더십 공부가 많이 된 한 해”라고 정리했다. 그는 “불필요한 이슈로 모두 힘들었는데, 겸손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음을 재차 느꼈다. 그런 가운데 긍정적 전환점은 늘 어딘가에 숨어 있더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지난 8월 전북과 27라운드(1-0 승), 9월 포항 스틸러스와 32라운드(0-0 무)를 꼽았다. 우승 길목으로 가는 데 중대한 승부처였다. 여러 선수가 컨디션 저하, 부상 등으로 고전할 때다.

홍 감독은 추구하던 빌드업 색채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스리백 카드를 내세워 라이벌전에서 승점을 쌓았다. 그는 “그동안 해오지 않은 것을 두고 일부 선수 반대가 따랐지만 (좋지 않은 흐름에) 지면 안 되는 경기였다. 설득하고, 이해시켰다. 결국 승점을 잃지 않으면서 (반전한)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홍 감독은 ‘빅클럽 지도자는 선수 놀음’이라는 일부 시선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좋은 선수가 있으면 훈련과 경기에서 수월한 건 맞다. 그런데 이게 무조건 승리를 보장하느냐”며 “울산 같은 팀의 선수는 개성과 생각이 강하다. 무작정 ‘이렇게 해라’, ‘이거 안 되냐’는 옳지 않다. 여러 형태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질책 기준도 명확하단다. 홍 감독은 “중요한 건 좋지 않은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 태도 좋지 않은 선수가 스타여서 감독이 그냥 넘어간다면? 다른 20여 명 선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엔 가차 없이 지적한다”고 강조했다.

선수 시절부터 ‘홍명보’하면 떠오르는 ‘카리스마’라는 단어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난 카리스마가 내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전에 섬세하게 선수를 설득하려는 게 많은 데 그런 건 재미 없는지 안 나오더라”고 웃었다.

◇박용우 보낸 거 후회 없다, 김영권 고마운 선수

홍 감독은 시즌 중 박용우를 UAE 리그에 보낸 것에 “후회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박용우가 빠져서 다른 선수가 많은 에너지를 쓴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박용우는 지난해에도 (해외에서) 오퍼를 받았다. 나도 선수 시절 여러 번 해외 진출 기회가 있는데 늦게 나간 적이 있다”며 “솔직히 지난해 우승 못했다면 (그를 붙잡고) 한 번 더 같이하자고 했을 것 같은데 보내주는 게 맞고, 잘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선수 황혼기에 역시 중동에서 거액 제안을 받고도 잔류한 수비수 김영권에 대해서는 “마지막 (해외) 오퍼였을텐데 미안하고 고마운 선수”라고 했다. 김영권은 장기간 해외 생활하다가 스승 홍 감독의 부름을 받고 지난해 울산에 입성해 팀 우승을 도왔다. 중동 제안이 솔깃할 만했으나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켰고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하며 2연패 주역이 됐다.

◇K리그 문화설계자로도 우뚝…‘감독 홍명보’ 도전 ing

홍 감독은 성적 뿐 아니라 구단의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 ‘팬 프렌들리 클럽상’을 독식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울산은 평균 2만 관중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팬이 몰리는 ‘전국구 구단’으로도 거듭났다. ‘K리그 문화 설계자’로도 거듭난 그는 “자부심을 느끼고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잘 가세요~’를 열창하는 팬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며 “앞으로 울산의 3연패 뿐 아니라 좋은 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울산과 2026년까지 3년 연장 계약하면서 국내 프로스포츠 토종 사령탑 ‘최단기 연봉 10억 시대’를 열었다. 프로축구 선수 최초의 ‘연봉 1억 시대(1995년)’를 연 데 이어 또다른 이정표를 쓴 것이다. 홍 감독은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더 중요한 건 이를 통해 우리 리그 문화가 더 나아지고 선수, 지도자가 더 존중받는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언제까지 감독할 것이냐’는 말엔 “아직 운동장에 더 있고 싶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며 제3 전성기에 ‘무한 도전’ 의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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