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유해진 씨는 연기장인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연기를 제일 잘해요. 기술적으로 최고죠. 내공이 엄청난 배우에요.”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파묘’에서 장의사 고영근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을 향한 장재현 감독의 찬사다.대사의 대부분이 애드리브였는데, 치고 빠지는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상대를 빛나게 한 내공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도 살고, 상대도 돋보이게 하는 액션을 펼쳤다.

이같은 장감독의 발언에 대해 유해진은 “어떤 작품에선 제가 맥을 끌고 가기도 하지만, ‘파묘’에선 한발 벗어나서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근은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하고, 표시 안 나는 조력자다. 앞에 가는 사람들이 비탈길을 만나서 힘들 때 슬슬 밀어주는 서포터”라고 정의했다.

극 중 영근은 종교 대통합을 이뤘다. 기독교인들과 찬송을 부르며 성경을 공부하면서도 경문을 외울 땐 정확한 타이밍에 추임새를 넣는다. 그 추임새가 마치 경문에 녹아있는 듯 자연스럽다. 풍수가의 빈틈을 파고들기도 하고, 무속인의 세상을 꿰뚫기도 했다. 나쁘게 보면 ‘종교적 기회주의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따지면 기회주의자가 아닌 사람도 있나요. 떡에 비유하면 화림은 무지개떡, 상덕은 계피나 시루떡이에요. 자기색이 진하거든요. 영근은 백설기였어요. 무채색이기도 하죠. 네 인물이 제법 다 강해요. 이야기도 강한데 인물이 표현하는 것도 센 편이죠. 영근은 진행자이면서 정리하고 환기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식혜 같은 인물이라 생각했죠.”

‘파묘’는 배우들의 합이 중요한 작품이기도 했다. ‘묘벤저스’라는 표현이 나올만큼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다. 최민식은 김고은을 손흥민이라고 치켜세웠고, 김고은은 최민식을 히딩크에 비유했다. 유해진의 롤은 굳이 따지면 플레이메이커에 가깝다. 슈터가 골을 넣기 좋게 적재적소 패스를 연결해주는 인물이다. 그 덕분에 영화가 살아난다.

“개인적으로 이런 역할을 좋아해요.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슬쩍 다가와서 다음 할 일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잖아요. ‘입관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이겁니다’ 뭐 이러면서 소곤소곤 설명해주는 분이요. 그분이 앞에 나와서 큰 목소리로 ‘자 이제 저를 따라주시고요’라고 안 하잖아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영근은 ‘묘벤저스’의 쉼표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걸 잘하고 싶었죠.”

‘파묘’는 젊은 무당인 화림 역의 김고은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살굿이나 ‘혼 부르기’와 같은 독특한 시퀀스에선 늘 화림이 앞에 서 있다. 같은 현장에서 유해진은 후배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그 일을 혼자 해내야 하는 건 김고은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든지 알죠. 에너지를 엄청 써야 해요. 가수가 콘서트할 때 마이크를 받는 순간 ‘이제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대요. 외로운 순간이죠. 힘들고 괴로워도 미룰 수 없어요. 이겨내야만 하는 거예요. 화림은 어설프게 흉내내면 금방 들통나는 역할이에요.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더 고생했어요. 이제 보람을 느낄 거예요.”

받쳐주는 역할로 연출가의 칭찬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욕심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절대 넘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절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때론 그 그릇을 넘쳐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유해진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이다.

“영근은 상덕의 파트너지만 핸들을 쥔 사람은 상덕이에요. 이야기를 상덕이 가져가잖아요. 그걸 제가 끌겠다고 핸들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보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죠. ‘파묘’는 늘 자연스럽고 편안했어요.”

1997년 영화 ‘블랙잭’으로 데뷔해 벌써 28년 경력의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여전히 큰 감정신이나 액션을 앞두고는 긴장한다. 그 불안함을 누르기 위해 현장을 돌아다니고 땀을 흘리면서 마음을 정돈하는 데 적잖은 힘을 쓰는게 그의 연기 비결이다.

“방법이 없어요. 생각하고 생각해서 정리하는 수밖에요. 어떤 유명한 야구선수가 ‘어떻게 하면 좋은 야구선수가 될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대요. 그 선수가 한 말이 늘 글러브를 정성스럽게 길들이고 베고 자고, 공을 들였다고 했대요. 결국 마음가짐이에요. 이게 다 통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본을 소중히 여겨요. 아마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