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봅슬레이 김동현 선수가 넷플릭스 ‘피지컬 100-시즌2’에 참가했다. 100명이 참가해 완벽한 피지컬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왕관을 위해 경쟁하는 예능에서 김동현 선수는 청각장애라는 장애를 가졌지만 최강 피지컬을 향해 아름다운 도전을 펼쳐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용기를 전달했다. 김동현 선수가 ‘피지컬 100’ 도전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스포츠서울에 기고했다. <편집자주>

“지이잉~지이잉~”

나에게는 휴대폰 벨소리보다 더 확실한 신호인 스마트워치의 진동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넷플릭스 ‘피지컬 100’ 작가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세요?”

갑작스러웠지만,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의외의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통화 가능합니다.”

“‘피지컬100 시즌2’에 참가하시기를 제안드리며 인터뷰를 하고자 합니다.”

작가님의 친절한 목소리로 이 말을 듣는 순간, 설렘으로 내 심장이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다.

“물론입니다. 청각장애인 인식 개선과 스포츠 가치를 확산시킬 기회라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뜨거웠던 여름, ‘피지컬 100’의 대기실은 100명의 참가자로 북적였다. 각자의 이름표를 확인하며 가슴에 붙이는 모습들 사이로,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선수촌에서 보았던 몇몇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화려한 조명 아래 경기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100인의 참가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는 성별, 나이, 인종을 초월해 가장 완벽한 피지컬을 탐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된 기계음이었지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크고 분명하게 귓가에 박혔다. 다행히도 모든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이로써 경쟁에 집중할 준비를 마쳤다.

어둠 속 다리만 겨우 비추는 조명 아래에서 사전 퀘스트가 발표되었다. 바로, 무동력 트레드밀 달리기. 출발 신호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트레드밀 위에서 열심히 달렸다. 중간 중간 경기 상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을 들으려 귀를 기울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려 결국 만족스럽지 않은 72위라는 순위를 받았다.

이 순위를 토대로 상위 50명에게는 1:1 데스 매치 상대와 경기장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세 가지 경기장이 공개될 때마다 여러 걱정이 앞섰다. 첫 번째 경기장은 장애물이 많은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고, 두 번째는 물이 가득 찬 참호, 세 번째는 격한 몸싸움이 허용된 케이지였다. 참호에서는 인공와우 외부기기가 물에 젖어 고장 날 수 있었고, 케이지에서는 격한 충돌로 손상될 수 있었다.

피지컬100 참가를 위한 사전 인터뷰에서 격한 몸싸움에도 괜찮을지, 인공와우 외부기기가 방수 기능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이 경기장들을 보고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퍼즐이 맞춰졌다.

상위 순위 참가자들이 상대 선수를 선택하는 시간에 한 참가자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어떤 스포츠를 하세요?”

“봅슬레이 선수입니다.”

대답을 듣자 많은 참가자들이 나를 피해 갔다. 결국, 하위 순위임에도 선택권이 주어져 소방 구급대원을 상대로 장애물이 많은 첫 번째 경기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서는 비교적 인공와우 외부기기의 손상 위험이 적어 보여서 한결 마음 편히 경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1 경기 도중, 상대방과 강렬한 충돌로 인해 헤어밴드로 고정되어 있던 인공와우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순간,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심장이 뛰는 진동만이 느껴졌다. 소리 없이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고, 매 순간이 생존과 같았다. 상대방이 다가오는 기척과 발걸음의 무게감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순간 손으로 무언가를 쳤고, 그것은 공이었다. 그렇게 공을 지켜낸 순간, 버저비터처럼 경기장에 종료음이 울렸다. 승리의 기쁨과 함께 떨어뜨린 인공와우 외부기기를 찾기위해 허둥지둥하는 동안 모든 긴장이 풀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감격스러웠다.

이 승리는 다음 단계인 팀 경기로 진출할 기회를 제공했다. 새로 결성된 팀과 함께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며 눈앞에 펼쳐진 미로를 바라보았다. 경기 규칙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시작되고 또 한 번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중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팀장의 지시와 팀원들과의 전략 회의에 집중했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효과음 사이에서, 우리 팀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삑!” 출발 신호와 함께, 미로의 깊숙한 곳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경기장 안의 소리가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팀원들의 움직임, 상대팀의 접근, 심지어는 숨소리까지도 이 순간, 인공와우를 통해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 기울였다. “동현이형! 여기 도와줘!” 팀장의 호출에 따라 방향을 바꿔 또 다른 길로 빠르게 이동했다. 각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소리와 함께 호흡했다. 우리의 전략은 각 지점을 신속하게 점령하여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패배했다.

이 라운드를 통해 ‘소리’라는 것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전략적인 팀 플레이를 조율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소리는 경쟁의 순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게 인공와우를 통해 경쟁의 순간들을 더 깊이 있고 의미 있게 경험했지만, 방송에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담기지 않은 점은 아쉽다. 청각장애인으로서 장애인 올림픽이 아닌 일반 올림픽에 참가한 것처럼, ‘피지컬 100’에서도 동등한 경쟁자로서 참여했다는 사실이 매우 의미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소리를 통해 우리가 더 깊이 연결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경험은 단순히 피지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이상의 깊은 교훈을 주었기에, 이 이야기를 스포츠서울과 ‘사랑의달팽이’에 기고하기로 했다. 이 글이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도전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자신만의 ‘피지컬100’을 찾아 나서기를 기대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은메달리스트>

<김동현 프로필>

2024 넷플릭스 피지컬100 시즌2 언더그라운드 출연.

제24회 베이징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국가대표.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2인승 대한민국 최초 출전 & 4인승 출전.

제21회 벤쿠버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 대한민국 최초 출전.

연세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