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 기자] 하지 않아도 됐다. 이별이 확정됐는데 굳이 마운드에 오를 필요가 없었다. 우천 중단 시간이 길어진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애써 불펜 피칭을 할 필요 역시 없었다.

정말 마지막까지 LG 최고 선발 투수 케이시 켈리(34) 다웠다. 전날 자신의 대체자가 계약했음에도 20일 잠실 두산전 선발 등판을 자청했다. 그리고 1회부터 시속 150㎞를 던졌다. 2.2이닝 무실점. 우천 노게임으로 지워진 경기지만 만원 관중이 들어찬 잠실구장에서 에이스답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1회 첫 타자 정수빈을 상대로 시속 150㎞ 패스트볼을 던졌다. 1회 삼자범퇴. 2회에도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3회초 아웃 카운트 2개를 잡을 때까지 굳건히 마운드를 지켰다. 동료들도 남다른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1회말 오스틴 딘이 투런포, 문보경이 오스틴에 이어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2회말에는 오지환과 오스틴의 연속 적시타로 6-0으로 달아났다.

다만 하늘이 야속했다. 3회부터 비가 내렸고 빗줄기가 굵어졌다. 우천 중단 시점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비로 보였다. 무심하게도 그친 듯했던 비가 다시 내렸다. 잠실구장을 찾은 팬이 90분 넘게 기다리며 경기 재개를 기대한 순간, 켈리도 같은 마음으로 불펜에서 몸을 풀었다. 그러나 다시 몰려온 비구름으로 우천 노게임. 공식적으로 켈리의 마지막 경기는 지난 14일 대전 한화전이 됐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가슴 속에서는 아니다. 대전에서 투구가 마지막이 아니었음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우천 노게임 후 LG 구단은 켈리와 이별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선수들은 켈리와 포옹하며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켈리를 포함해 선수단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행사를 마치고 켈리는 “대전 경기가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경기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기 때문에 마지막이 되고 싶지 않았다”며 “잠실에서 두산과 경기가 잡혀 있었고 이 경기를 준비했다. 이 경기까지 던지고 싶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오늘까지 던지기로 했다. 동료들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경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들었다”고 밝혔다.

우천 중단 상황에서도 끝까지 경기를 준비한 것에 대해서는 “계속 집중하려 했다. 비가 그치고 경기가 재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끝내지 못한 이닝은 끝내고 싶었다”면서 “아쉽게 경기가 다시 열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료들과 짧은 이닝이라도 함께 해서 감사하고 다행이다”고 미소 지었다.

고별식과 관련해서는 “정말 전혀 몰랐다. 외국인 선수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눈물을 어떻게든 참으려 했는데 그 순간 눈물이 그치질 않더라. 남아주셔서 응원해주시는 팬들의 모습이 내 마음 한자리에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할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그는 “동료들이 우니까 나도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5년 반 동안 LG 동료들과 함께한 모든 게 다 기억이 났다.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법을 배운 순간, 커피 주문할 때 실수하지 않는 법을 배운 순간 같은 게 막 생각이 났다”면서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동료들과 돈독했다. 아이들끼리도 친했다. 이렇게 헤어지게 됐지만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영상 통화 계속하면서 연락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켈리는 바로 다음 날 일정을 두고 “웨이버 공시가 되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계속 한국에 있을 것이다. 첫째 딸이 유치원을 다니니까 앞으로 일주일은 이전과 똑같이 여기서 가족과 지낼 계획이다. 첫째 딸은 일주일 후에 그냥 애리조나로 돌아가는 것만 알고 있다. 다시 한국에 오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 같은데 알게 되면 좀 슬퍼하지 않을까 싶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켈리는 “내 최고 경기는 당연히 한국시리즈 5차전이었다. 그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LG 선수들과 지도자분들, 프런트 분들, 그리고 팬 모든 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켈리라는 선수를 경기에 나갈 때마다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해주신다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 같다. 그리고 야구도 잘했던 선수로 기억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