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지난 달 개봉한 영화 ‘파일럿’의 한정우 같은 조정석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다소 당황할지 모른다.
14일 개봉한 영화 ‘행복의 나라’에서 조정석은 웃음기를 지웠다. 대신 강직한 눈빛으로 정의를 향해 돌진했다.
‘행복의 나라’는 10.26 대통령 시해사건에 가담한 김재규의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의 재판과정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조정석은 극중 박태주를 변호하는 속물적인 변호사 정인후를 맡았다.
조정석은 “어떤 역할이든 다 갈증이 있다. 정인후는 제게 많이 찾아오지 않는 제안이라 생각한다. 이번에는 그간 해보지 못한 장르다. 새로운 도전과 기회로 봤다”고 출연계기를 밝혔다.
“‘파일럿’이 잘 돼서 기쁘죠. 연기 인생에 있어서 ‘이런 순간이 또 올 수 있을까‘정도로 저에게 과분한 시간이에요. 여름에 두 작품이 나오는데, 코미디와 정극으로 톤이 정반대에 있죠. 관객 입장에서 당황스럽거나 어색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각자 매력이 있잖아요. 얼굴 차이도 있어요. ‘파일럿’은 살을 정말 많이 뺐고, ‘행복의 나라’는 하나도 안 뺐어요. 사람들이 ‘갓 캐낸 흙감자’라고 하더라고요. 저의 여러 얼굴을 보여드릴 기회인 것 같아요.”
조정석이 연기한 정인후는 ‘변호인’(2013)의 송우석(송강호 분)을 떠올리게 한다. 초반부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기 삶만 챙기는 변호사가 점차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뜬다는 점이 그렇다.
“‘변호인’은 저도 정말 좋아하는 영화예요. ‘변호인’을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다르죠. 정인후가 박태주를 대하는 마음도, 법정장면도 다르죠. 연기할 때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행복의 나라’는 故 이선균의 마지막 유작이다. 이제는 그의 연기를 볼 수 없다. 강직한 군인 박태주를 표현한 점은 많은 관객에게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조정석은 이선균과 마지막으로 가장 많이 호흡한 배우로 남을 수밖에 없다. 평소 작은형이라 부르며 애정을 드러냈던 조정석은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균이형 필모그래피에서 이렇게 굵직한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취조실 장면이 많은데 내용의 무거움과 반대로 일상적인 얘기나 농담 섞인 대화를 많이 했어요. 차분하고 즐겁게 분위기를 형성했어요. 촬영장에서 눈만 봐도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았어요. 하이파이브 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무너졌어요. 완성본을 함께 봤다면 ‘고생했다’고 해줄 것 같아요.”
이선균과 달리 파렴치한 권력자 전상두를 연기한 유재명은 무서웠다고 했다. 현장일 때와 현장 밖에서의 차이가 너무 커 오히려 더 잔인해 보였다고 했다.
“재명이형은 제가 꼬셨어요. 제가 응석 부려서 출연했다고 했는데, 그건 아니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같이 해요. 형~’이라면서요. 촬영할 땐 완전히 전상두로 있다가, 분장 지우고 오면 소탈한 아저씨가 되더라고요. 무서운 배우라는 걸 느꼈죠.”
‘파일럿’에 ‘행복의 나라’가 연이어 개봉하고, 넷플릭스 예능 ‘신인가수 조정석’도 나올 채비를 마쳤다. 올여름은 조정석의 화양연화에 가깝다.
“‘파일럿’ 개봉하기 한참 전에 한 지인이 ‘세 개 다 망하면 어떡해?’라고 하더라고요. 명치를 때렸어요. 다행히 ‘파일럿’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 한시름 놨어요. ‘행복의 나라’는 더 영화적이에요. 극장으로 와서 저의 두 얼굴을 봐주세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