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런던에서 펼쳐진 토트넘 VS 맨유 리그경기 모습


[런던=스포츠서울 이성모 객원기자] 맨유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 '불운'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다는 뜻이다. 어느 '일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클럽 '전체'가 그렇다.


잉글랜드 1부 리그 최다 우승 역사에 빛나는 맨유가 토트넘에게 6분 만에 3골을 내주며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날 경기 중 판 할 감독은 애슐리 영을 최전방에 세운 괴이한 전술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하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판 할 체제의 맨유가 두 번째 시즌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또 한 번 총체적인 문제를 노출했다는 것이었다.


양팀의 경기가 끝난 직후 토트넘 프레스룸에서 진행된 양팀 감독의 기자회견장은 두 감독의 극과 극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토트넘의 포체티노 감독은 어느 때보다도 밝은 모습이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기자회견장에 입장해서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대답했는데 이는 그의 팀이 3-0으로 맨유를 꺾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반면, 맨유의 판 할 감독은 기자회견장에 들어와서 현지기자들이 첫 질문을 하는 사이에 자기 앞에 놓인 컵에 물을 따르며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의 기자회견장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묘한 아우라가 흘렀다. 감독과 기자들 사이에 언제 '싸움'이 터질지 모르는 묘한 긴장감 같은 것이다.


실제로, 이날 그의 기자회견장에서는 판 할 감독과 현지 기자 사이에 신경전이 펼쳐졌다. 한 기자가 "과거에 토트넘 감독직을 거절한 것이 후회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이 결국 판 할 감독의 심기를 건드리고 만 것이다.


판 할 감독의 반응에 대해 언급 하기에 앞서 그 자리에 있던 통신원은 이 질문 자체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봤다. 이 기자회견장은 두 팀의 경기에 대해 논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지(경기직후 기자회견이므로) 2년 전의 선택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이미 판 할 감독이 그 질문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할 것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잉글랜드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판 할 감독의 답변을 대서특필했다. "맨유가 토트넘보다 빅클럽이다"라는.


판 할 감독의 입장에서는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차례 잉글랜드 미디어와 언쟁을 펼쳤던 판 할 감독은 (현지기자들이 충분히 예상했던대로) 이 질문에 대해 "맨유에서의 도전이 더 컸고, 토트넘에게는 미안하지만 맨유가 더 빅클럽이다"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을 마친 후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좀 한심하지 않느냐(pathetic)"고 기자에게 직접 반문했다. 다시 그 기자가 "무엇이 말인가"라고 반문하자 판 할 감독은 "상관없다. 스스로를 즐기라"(Enjoy yourself)라는 날선 말로 해당 기자와의 질의응답을 마쳤다.




그 기자와 판 할 감독의 질의응답이 오고가는 사이, 기자회견장 현장에 있던 통신원의 눈에 가장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은 그 두 사람이 아닌 판 할 감독 옆에 앉아있는 맨유 프레스 오피서의 표정이었다. 이번 시즌, EPL의 거의 모든 감독의 기자회견에 참석했고 그럴 때마다 감독 옆에 반드시 한 명씩 동행하는 프레스 오피서의 얼굴을 봤지만 이 때처럼 마치 체념한 듯한 얼굴의 프레스 오피서의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판 할 감독과 현지 기자들의 신경전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에 진저리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 맨유의 '불행'한 모습은 기자회견장의 모습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의 맨유는 전체적으로 잘못 돌아가고 있다.


이날 양팀의 경기가 30분 가량 지연된 것은 도로 정체로 인한 맨유 팀 버스 이동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맨유라는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팀에게 발생해서는 안 되는 아마추어적인 실수다. 현장에서는 해당 지연에 대해 '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해 정체가 발생해서'라고 설명했으나 도로가 막힐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제 시간 이전에 도착하는 것이 프로팀의 모습 아닌가? 그들이 경기장에 늦게 도착하면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현장에 있던 기자도, 팬들도 아닌 맨유 선수들 그 자체다.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급하게 컨디션 조절을 한 뒤 경기에 나서야했기 때문이다.


이날 양팀의 경기 중 맨유의 판 할 감독은 단 한 차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보좌하는 수석코치인 라이언 긱스의 모습마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경기 도중 터치라인에 나와서 맨유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린 것은 판 할도, 긱스도 아닌 '제 3의 코치'였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기 위한 중요한 일전에서 감독과 수석코치가 둘 다 이렇게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은 다른 팀에서는 상상하기가 힘든 모습이다.


통신원이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사이, 믹스트존에 있던 다른 통신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날 맨유 선수들은 믹스토존에서 대부분 인터뷰도 갖지 않은 채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긱스 수석코치는 그와 사진을 찍자고 요청한 한 팬에게 불쾌하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이는 그날의 결과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모습이지만, 문제는 그들의 그런 반응이 과연 오늘 한 경기 때문인 것이냐는 점이다.


큰 질문이 하나 남는다. 도대체 지금 맨유에서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날 현장에서 통신원이 목격한 바로는 (상술한 바와 같이) 프레스 오피서, 선수들, 긱스 코치 등 전원이 불행해보였다. 그들의 경기를 TV로 지켜본 현지와 한국의 팬들 중에도 지금의 맨유에 만족하는 팬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현지 기자와 언쟁을 벌인 판 할 감독 역시 불행해보였다. 그러나 그의 입장이 다른 모든 관계자와 다른 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판 할 감독 그에겐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겐 선수를 영입할 선택권과 이날 토트넘 전에서 어떤 선수를 출전시킬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선택권을 갖고 애슐리 영을 최전방에 투입하는 선택을 했다. 본인의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번 시즌 현재까지 모든 대회에서 그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지역 라이벌팀 맨시티는 이미 다음 시즌 감독을 발표하고(과르디올라) 벌써부터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는 와중에 맨유는 이번 시즌 내내 지적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시즌 막바지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 맨유는 불행하다. 클럽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가 그렇다. 클럽 전체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대로는, 스스로 변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다음 시즌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글, 사진. 런던=스포츠서울 이성모 객원기자 london2015@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