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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3쿠션 빠지게 돼 보르도까지 왔네요.”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쓴 앳된 동양인 남성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삼삼오오 몰려 담소를 나누며 당구 테이블을 응시하는 프랑스인 관중과 다르게 경기 내내 오로지 당구공 3개에 몰입해 있었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톱랭커들의 ‘매직 샷’이 나올 때마다 손뼉을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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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보르도컨벤션센터에서 진행중인 제69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를 찾은 김성조(25)씨. 현재 연세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과 4학년에 재학 중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대학생활을 마치기 전 생애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 중심은 파리의 에펠탑도, 스위스의 융프라우도 아니었다. 오로지 당구였다. 그는 “(3쿠션선수권 개막에 맞춰) 지난 13일 파리로 들어와서 보르도로 넘어왔다”며 “19일 결승전까지 모두 볼 예정”이라고 했다. 4개월 전 이미 세계캐롬당구연맹(UMB)을 통해 세계선수권 티켓을 예매했다. 내달 13일까지 한 달여 배낭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당구 외엔 구체적으로 잡은 일정이 없다. “이번 대회를 보는 게 목적이었으니 결승전이 끝난 뒤 남은 일정을 구체화하려고 한다. 사실 계획에 맞춰 여행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고 웃었다. 여행 자금을 아끼기 위해 대회장에서 10㎞ 이상 떨어진 호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오전에 대회장에 올 땐 자금도 아끼고 경치 구경도 할겸 걸어서 오고 있다. 다만 돌아갈 땐 너무 피곤해서 트램을 타게 되더라”고 웃었다. 세계3쿠션선수권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30분에 시작해 밤 11시가 다 될 때까지 진행되고 있다. 현지 당구인들과 관계자들도 오후 내내 진행되는 경기를 빠짐없이 지켜보기란 쉽지 않다. 김 씨는 대회 기간 내내 자리를 지키며 매경기 심도있게 관전했다. 점심과 저녁은 대회장 근처에 마련된 푸드트럭을 이용해 간단하게 해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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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의 당구사랑은 대학교 1학년 때부였다. 몸담고 있는 자연과학대학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당구클럽이 있는데, 학우들과 어울려 큐를 잡았다고 한다. 다만 3쿠션을 경험한 건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수학과 과학을 주로하는 전공자답게 당구공 3개를 두고 내 공을 큐로 쳐서 나머지 두 공을 맞히기까지 세 번 이상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3쿠션 종목에 매력을 느낀단다. “4구보다 3구 매력에 나도 모르게 흠뻑 빠지게 됐다. 평소 취미가 3쿠션 경기 중계 영상 등을 챙겨보며 감각을 익히는 것”이라고 웃었다. 그는 예정대로 보르드에서 당구만 보고 돌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와인투어 등 보르도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엔 전혀 관심이 없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난 그저 당구를 보기 위해서 프랑스에 온 것”이라며 “다만 파리에 이틀 정도 머물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예정인데, 그래도 에펠탑은 봐야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고 웃었다. 이례적인 한국 당구팬의 등장에 현지에 파견된 대한당구연맹 관계자는 물론 김행직 조재호 김재근 허정한 강동궁 김형곤 등 국가대표 6명의 선수도 놀라워하고 있다. 대표 선수들은 경기 후 자신을 응원해준 김 씨와 다정하게 사진도 찍고 담소를 주고받았다. 당구연맹 관계자는 “먼 곳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정말 당구를 즐기면서 관전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했다. 김재근도 “당구 동호인들이 1000만에 가까울 정도로 국내 열기가 뜨겁지만 연령층이 대부분 높다. 한국 당구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이처럼 젊은 대학생 팬이 늘어야 하는데 너무나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김 씨는 “이제 졸업반이어서 진로를 두고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당구관련 업종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