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6422
제69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당구천재 김행직. 제공 | 코줌코리아

[보르도=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앞으로 기회는 더 많다.”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당구 최고 권위 대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깜짝 준우승을 차지한 김행직(24·전남연맹·세계랭킹 18위)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3쿠션 국내랭킹 1위이자 ‘당구천재’로 불리는 김행직이 한국 당구의 새 역사를 썼다. 그는 20일(한국시간)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보르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9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결승에서 ‘4대 천왕’ 중 한 명인 스페인의 다니엘 산체스(42·5위)에게 37-40(19이닝)으로 아깝게 졌다. 이번 대회에 나선 48명의 선수 중 최연소로 1992년에 태어난 그는 조별리그 O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16강과 8강에서 각각 터키의 타이푼 타스데미르(12위), 이탈리아의 마르코 자네티(6위)를 눌렀다. 4강에서도 2003년 챔피언 출신인 터키의 세미 세이기너(26위)에게 공격적인 샷을 앞세워 16이닝 만에 40-18 완승하며 결승에 안착했다. 자신보다 18세나 많은 통산 3차례나 챔피언을 차지한 산체스를 상대했는데, 결승전이란 부담감이 시나브로 작용했다.

4강에서 하이런(한 큐 최다 연속득점) 11점을 기록한 김행직은 노련하게 점수를 쌓은 산체스와 다르게 초반 실수를 종종 범했다. 15이닝 큐를 잡기 전까지 25-36으로 뒤졌다. 뒷심을 발휘했다. 15이닝과 16이닝 각각 6점, 3점을 따내면서 순식간에 34-36까지 따라붙었다. 당황한 산체스는 17, 18이닝 연속 실수를 범하면서 2점 추가에 그쳤다. 김행직은 역전의 기회를 잡았으나 안타깝게도 2연속 샷이 빗나가며 추격에 실패했다. 결국 산체스가 19이닝째 2점을 보태 40점에 먼저 도달했고, 후공의 김행직은 3점을 얻는 데 그쳤다. 그는 “평소 월드컵 대회처럼 느끼면서 경기했기 때문에 특별히 떨리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중하지 못한 것 같다”며 “내 감각을 믿고 나름대로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 같다. 조금 더 여유 있게 해야 했다. 경험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DSC03283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의 다니엘 산체스(가운데)가 샴페인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제공 | 코줌코리아

김행직은 자신을 누르고 통산 4회(1998 2005 2010 2016) 우승을 차지한 산체스의 경기를 보면서 “워낙 대선수인데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이럴 때일수록 초반 스퍼트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결과에 개의치 않으면서 “난 (아직 젊기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 이런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김행직은 비록 우승은 내줬지만 이번 대회 애버리지(이닝당 평균득점)에서 2.043점으로 챔피언에 오른 산체스(1.951)보다 높았다. 4강까지는 물오른 샷 감각을 뽐냈다는 뜻이다. “사실 재작년까지 전국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고 국내랭킹 1위하면서 좋은 흐름을 보이다가 최근 부진했다. 자신감도 떨어졌는데 이번 대회 준우승으로 스스로 믿음을 얻었다”고 웃었다.

이날 우승한 산체스를 비롯해 보르도컨벤션센터를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관중은 우승한 김행직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고교 1학년 시절인 지난 2007년 스페인 세계주니어선수권 챔피언에 오른 그는 2010년 이후 3년 연속 정상에 오르며 사상 최초로 4회 우승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을 제패하면서 세계 톱클래스를 위협할만한 잠재력을 보였다. 마침내 이번 대회에서 천재성을 입증하고 당구계에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됐다. 김행직은 당구클럽을 경영하는 아버지이자 당구 스승인 김연구 씨 얘기를 꺼내자 “한국에선 새벽에 열린 경기였는데 밤을 지새우며 응원해주셨을 것 같다. 나보다 더 걱정하고 부담을 느끼셨을 텐데 항상 감사하고 앞으로 훌륭한 당구 선수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산체스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상금 1만 유로(약 1250만 원)을, 김행직은 준우승으로 상금 6000유로(약 750만 원)를 받았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