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09820_001_20170908083106125
강백호.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제공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미래가 창창한 선수의 꿈을 꺾을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프로는 현실이다.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한다. 본론부터 말하면 프로야구 선수의 투타 겸업은 이뤄지기 힘든 꿈이다. 흥행을 목적으로 한 두 시즌 쇼를 펼칠 수는 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선수와 구단이 길을 정해놓는 게 현명하다. 21세기 들어 가장 주목 받은 신인 서울고 강백호(18)가 설 자리는 마운드보다는 타석이 돼야 한다.

강백호는 최근 일주일 동안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은 야구선수였다. 아직 프로에 입단하지도 않은 고등학생이 메이저리거 류현진이나 프로야구 인기팀 중심선수 못지않게 큰 화제가 됐다. 강백호는 지난 11일 막을 내린 18세 이하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결승전에서도 150㎞를 상회하는 미국 강속구 투수들에 맞서 안타 2개를 날렸다. 이렇게 강백호가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가 열린 캐나다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지 3~4시간이 지난 시점에 한국에선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예상대로 1순위 지명권을 지닌 kt가 강백호를 선택했다.

kt 구단은 들떠있다. 강백호를 바라보며 장밋빛 미래를 구상 중이다. 12일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표팀이 귀국하자 곧바로 인천공항에서 환영식을 열었다. 임종택 단장 등 구단 지도부가 직접 공항을 찾아 강백호에게 kt 유니폼을 입혔다. kt 구단 관계자는 “우리 팀 창단 후 이렇게 주목받은 선수가 있었을까 싶다. 솔직히 우리도 강백호를 향한 관심에 많이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강백호가 KBO리그 그라운드를 밟기에 앞서 kt와 강백호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고등학교까지 투타겸업을 한 그는 프로에서도 투타 겸업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kt 김진욱 감독도 “강백호가 투타 겸업을 원한다면 감독으로서 그 의견을 존중할 생각이다. 아직 백호를 만나지도 않았지만 최대한 선수의 의견을 받아주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투구와 타격의 메커니즘은 상당히 다르다. 사용하는 관절과 근육의 부위도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운동역학적으로 차이가 크다. 모든 구단이 투수조와 야수조를 나누고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다르게 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수도권 구단 트레이너는 “아마추어 야구에선 투타 겸업이 가능하다. 경기수가 많지 않고 일정도 집중돼 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할 시간적 여유가 많다. 반면 프로야구 선수는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시범경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까지 모두 뛰면 일년에 180경기 이상을 소화하게 된다. 9개월 마라톤 일정에서 투수와 타자를 함께 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체력적으로 버티더라도 그 전에 다칠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일본프로야구 니혼햄의 ‘괴물’ 오타니 쇼헤이(23)가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프로 입단 후 선발투수와 외야수 혹은 지명타자를 겸업한 오타니는 지난해까지 매시즌 100경기 내외를 소화했다. 2016시즌 선발투수로서 10승 4패 방어율 2.12, 외야수로서 타율 0.322에 22홈런, 67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04로 괴력을 발휘하며 ‘만화’ 같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올시즌 투타 겸업이란 타이틀이 오타니에게 무거운 족쇄로 작용했다. 오프시즌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 그는 시즌 중반까지 투수 보직을 내려놓고 타석에만 섰다. 전반기 막바지 마운드에 올랐으나 투수로서 성적은 2경기 4.2이닝 8실점으로 초라하다. 부상으로 인해 타자로서도 51경기 출장에 그쳤다.

김진욱 감독도 투타 겸업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다. 김 감독은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선수에게 A로 가자고 이야기해도 선수가 B로 가고 싶어 하면 B로 가게 해줘야 한다. B가 되는 게 가장 좋지만 만일 B가 안 되고 A로 선회하게 될 때 빠르게 A를 진행시킬 수 있다. 분명 투수가 쓰는 근육과 타자가 쓰는 근육은 다르다. 그래도 선수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실패하지 않는다. 한 번 해보라고 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하면 백호는 투수보다는 타자가 맞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kt에 있어 현실적인 최상의 시나리오는 강백호가 NC의 나성범처럼 성장하는 것이다. 어느덧 1군 무대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kt지만 팀을 대표하는 확실한 프랜차이즈 스타가 없다. 강백호가 kt를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올라설 때 kt의 포스트시즌 도전도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150㎞를 던지는 강백호의 어깨를 아까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백호의 강한 어깨는 수비에서도 얼마든지 빛날 수 있다. kt는 NC 김경문 감독이 왜 좌완 파이어볼러 나성범을 타자로 전향시켰는지 돌아봐야 한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