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배우 김윤석이 영화 ‘남한산성’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귀를 기울이게 했다.

영화 ‘남한산성’(황동혁 감독)은 1636년 병자호란 중 청의 대군을 피해 달아나던 인조와 조정 신료들이 남한산성에서 발이 묶이면서 펼쳐지는 47일동안의 이야기. 여기서 김윤석은 인조(박해일 분)에게 청과 맞서 싸워서 죽더라도 대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조판서 김상헌 역을 맡아 묵직한 울림을 준다. 또한, 청과 화친으로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하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과 팽팽한 논쟁을 펼치면서 물러서지 않는 강건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할아버지를 잃은 나루(조아인 분)를 돌볼 때나 날쇠(고수 분)나 칠복(이다윗 분) 등 앞에서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모도 내비치며 김상헌이라는 인물에 좀더 다가가게 한다. 언제나 손색없는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감탄 하게 한 김윤석이 ‘남한산성’의 김상헌으로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김윤석

-이번에 가장 중점을 둔 점은.

김상헌은 영화에서 변화가 많고 콘트라스트가 많은 인물이다. 비단 김상헌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거는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에서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든 애썼던 어른들이 있었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소위 무책임하는 어른들, 거짓말 많이 하는 어른들, 기억이 안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많다. 그런데 이 영화는 비록 패배의 역사지만 목숨을 걸고 고민하는 어른들이 있었다는 거를 이야기한다. 이 영화가 그런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렇게 평생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 그 때 그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는 시간과 장소의 상징성도 있는 영화다. 김상헌이 가장 중요한 부탁을 날쇠에게 하고, 심지어 나중에 절까지 한다. 그걸 만든 장소다. 이런게 ‘남한산성’만이 가진 독특한 인간관계가 아닌가 싶다. 평민들에게서도 다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것들이 굉장히 인간적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도원수가 “격서를 가져온 게 천민인게 말이 되느냐”며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격서를 받지 않은 걸로 하자” 할 때 정말 숨이 탁 막혔다.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그게 무너진거다. 군대를 이끌고 올 것이라고 기대하던 김상헌이 기다리다가 환상을 본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꿈이었는데, 현실은 속까지 다 썩었다는 걸 보여준 거다. 그래서 김상헌이 마지막에 “낡은 것들이 다 없어지고 새로 서야한다”고 말한 것 같다.

-김상헌 외에 마음이 간 다른 역도 있나.

최명길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인조가 마음에 들기도 하다. 인조가 마음에 드는 건, 무능한 최악의 인간으로 치부 해버리는데, 인조가 그렇게 단정지을 인물인가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인물이고, 왕이 되고싶어서 했다기보다는 공신들이 만들어서 왕이 됐다. 게다가 그 일등공신이 최명길이다.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서 왕이 된 것도 아닌데 그 상황에서 얼마나 갈등이 컸을까 싶다. 그래서 영화에서 다른 인물을 연기해보라고 하면 인조를 해보고 싶다. 인물들이 누가 딱 옳다는 이분법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논리적으로 다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 공부를 많이 했다. 어떤 융단폭격을 받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게다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한쪽으로 치우칠수밖에 없는 자료들에 기대야하니 더 연구했다.

-다른 배우들과 호흡은.

모든 배우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재밌는건 영화는 처음이었지만, 사석에서 술자리는 자주 해서 어색함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대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 하나 틀리면 안되서 다들 대본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렇게 집중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중 이병헌은 김윤석의 큰 목소리에 감탄했다더라. 김윤석은 이병헌의 어떤 점이 좋았나.

임금에게 자신의 철학을 설득하는데 이병헌의 인상이 좋았다. “저는 만고의 역적이 되겠습니다” 할 때 이병헌의 표정이 좋았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걸 잘 보여줬다. 이병헌이 연기한 최명길은 자기의 논리를 잘 전달해야하는 절제된 인물인데, ‘명길은 더 작은 소리로 말한다’고 시나리오에는 그렇게 표현됐다. 그게 쉬운게 아닌다. 작은 소리로 말하지만 의지를 전해야하고 왕을 이해시켜야하는데 쉬운 연기가 아니다. 이병헌이 잘 했다.

-두 사람의 논쟁 장면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사실 난 무릎에서 전율을 느꼈다.(웃음)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는게 익숙한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왕을 쳐다보면 안된다고 하는데, 자꾸 고개를 들게 됐다. 나는 어떤 대사나 장면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명길과 서로의 이념을 가지고 싸울때 그 뒤에 20여명의 대신들이 정말 조용하게 집중하고 있다가 “컷” 하면 “하아~” 하고 숨을 몰아쉬는데, 그때 전율을 느꼈다.

-김윤석에게는 실속과 명분 중 뭐가 더 중요한가.

배우 김윤석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명분과 실속 야금야금 다 취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둘 다 공유해야 한다. 이 세상 살아가려면 그래야한다. 감독과도 그런 얘기했다. 어느 입장에서 서냐에 따라 다른거다. 타인을 바라보는 잣대가 비유하자면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처럼 김상헌의 입장에서는 이게 실속이다. 결국 어떻게 되나. 최명길의 말대로 화친하지만 결국 50만이 청으로 끌려간다. 그게 실속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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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