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윤식당’이 아니라도 윤여정은 힐링 아이콘이 되고 있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최성현 감독)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윤여정은 스스로도 “내가 이제 힐링전도사가 될까봐”라며 웃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오갈데 없는, 한물간 전직 복서 김조하(이병헌 분)가 17년만에 우연히 만난 엄마 주인숙(윤여정 분)의 집에 함께 지내게 되면서 난생 처음 만난 동생 오진태(박정민 분)와 펼치는 휴먼 드라마. 웃음이 픽픽 나오다가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따뜻한 영화다. 그래서 힐링 코드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적중한 tvN ‘윤식당’의 새로운 시즌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는 윤여정은 새 영화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윤여정은 “이병헌과 박정민이 연기를 너무 잘 해서 시나리오보다 더 잘 나온 것 같다”며 영화에 만족해 하면서도 “난 잘 못한 것 같다. 사투리 연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이야기했다. “캐릭터 설정이 서울온지 40년된 경북 사람이더라. 그런데 내 과외선생님이 부산 사람이라 석달을 같이 먹고 지내며 배웠지만, 쉽지 않았다. 감독이 힘들면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엄마 역은 뻔해서 내가 해보려 했다. 후회된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는 좀 해봤지만, 경상도 사투리가 가장 어렵더라. 내가 위험한 짓을 했다.”

그래도 엄마 연기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실제로도 두 아들의 엄마인 윤여정이기도 하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당신의 아들 생각도 많이 났다는 윤여정은 “나도 걔들을 보면, 굉장히 독립적인게, 걔들 어릴 때 내가 일 하느라 잘 못 챙긴게 미안하고 죄의식도 있다”고 돌이켰다. 극중 순간순간 조하의 진심을 모른채 상처주는 말을 하기도 하는 장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기도 했는데, 윤여정 역시 스스로도 비슷한 경험을 한듯 했다. “나도 그랬을거다. 작은 아들에게 큰 아들 비교해서. 아주 어릴 땐데도 폭발해서 ‘형 얘기 좀 그만하라’고 하더라. 인간이니까 실수를 한다. 그래서 우리때 얘기지만 남의 자식 키우는게 제일 힘든거라고. 내 자식한테도 상처를 주는데, 남의 자식에게 주는 상처는 원한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연기에 그 감정이 직접 이입되는 건 아닌가보다. 윤여정은 “그 순간,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조하랑 진태가 진짜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몰입하지 나의 일상과는 상관이 없다. 그건 기본적인 거에 깔려있지 순간순간 내 가족을 떠올리며 연기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엄마 없는 사람이라고, 엄마의 모성애는 아무리 세상이 변질되도 계산할 수 없는, 본능적인 무한함이다”라면서 이번 영화에서 그린 엄마이자 그리고 당신의 두 아들들을 향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런 마음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궁금했는데, 윤여정은 명쾌하게 답했다. “내 나이에 내가 돋보이는 건 많지 않다. 그냥 시나리오 한 30페이지 읽었을 즈음 이병헌과 박정민이 결정됐다고 해서 ‘아 그럼 나도 해도 되겠다’ 생각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분석하고 연구해봤자 결과는 생각과 다른 결과가 언제든지 기다린다. 인생은, 살아보니까, ‘풀 오브 서프라이즈’(Full of Surprise)다.”

영어를 쓰는 윤여정을 보면 곧장 ‘윤식당’의 모습이 떠오른다. 최근에는 스페인에서 촬영해 영어 쓰는 모습이 또 한 번 돋보였다. 그러나 ‘윤식당’ 이야기로 영화 이야기가 덮이는 걸 우려한 윤여정은 일부러 “예능은 위험해서 못하겠다”는 말로 화제를 돌렸다. “예능에 솔직하게 내 모습 그대로 나가는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더라”면서 “영화나 드라마는 연기로 평가 받는데, 그건 인정할 수 있다. 내가 연기 못한다는 소리는 그 사람이 나이가 몇이라도 내가 평가 받을 자세가 돼 있다. 그런데 예능은 그 사람이 그대로 나가는데, 내 늙은 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건 모욕적이다. 내가 왜 애들한테 그런 말을 받아야하는가. 사람은 다 늙는데. 그들에게 ‘너희도 늙는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그의 평소 성격답게 시원하게 말했다.

나이듦이나 인생의 유한함은 이번 영화로도 윤여정이 이야기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는 “그래서 나도 어떻게 정리해야하는건가 생각을 많이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버킷리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하고 싶은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좋다. 하고 싶은걸 다 했다는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바라는 일을 구분해야겠더라. 내가 송혜교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면 치매다. 내가 나이들면서 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걸 다 하고 죽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싶더라. 그냥 하루하루 잘 살면 되는거다”라며 인생의 내공을 또 한 번 드러냈다.

그런 윤여정은 굳이 좋은 선배나 선생님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난 아무도 안 가르친다. 나도 급해 죽겠는데 누굴 가르치나. 좋은 선배 하고 싶지도 않다. 나를 좋은 선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나쁜 선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내가 좋은 선배로 남고 싶다고 책을 쓸 수도 없다. 좋은 선배이고 싶고 그런 마음을 책으로 쓴다는 건 나의 가장 좋은 순간의 탁상공론이다. 하지만 사람은 성질이 나면 성질을 낼 수도 있는거다. 나도 사람이다. 선생님이라고 나를 불러주는 건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그냥 먼저 태어났다는 뜻이어서 그런거다.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에게 레슨을 줘야하는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다. 후배가 잘 해야한다고 가르치는건 그의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는 거고, 감독의 몫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을 또박또박 말하는 윤여정의 말들은, 그가 인정하지 않아도 인생선배의 가르침이면서 힐링이 된다.

그런 윤여정은 “내가 진짜 힐링 전도대사가 되어야겠다”며 웃으면서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사림이 어디있겠나. 그냥 스트레스, 스트레스 안 했으면 좋겠다. 스트레스가 없다는건 내가 죽었다는 거다. 살아있는게 스트레스다. 그런데 뭣하러 스트레스 를 활자화 하며 떠드나. 그냥 인생 자체가 스트레스고, 그게 내가 살아있는 증거다 생각하고 편하게 살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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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