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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민이 11일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현역 은퇴식 도중 가족들에 둘러싸여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광양=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현역으로 노트에 메모한 마지막 내용도 지도자의 꿈이었다.

K리그1 2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가 열린 11일 광양전용구장. 2002 한·월월드컵 4강 신화 일원으로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뛴 현영민(38)의 은퇴식이 열렸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아내 안춘영 씨, 세 자녀와 그라운드에 선 그는 월드컵은 물론 16년간 누빈 K리그에서 모습이 담긴 영상이 전광판에 흐르자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 안 씨는 영상이 흐르기도 전에 울컥했다.

2002년 울산에서 K리그에 데뷔, 지난해까지 16년간 선수로 뛴 그는 K리그 통산 437경기 9골 55도움을 기록했다. 탁월한 개인 전술과 인간 투석기를 연상케 하는 롱스로인을 트레이드마크처럼 달고 다닌 그는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날 전광판엔 박항서 베트남 대표팀 감독,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황선홍 FC서울 감독 등 한일 월드컵을 함께 한 선배들이 등장해 그의 제2 인생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홍 전무는 “2002년 당시 룸메이트였는데 이렇게 마지막 멤버가 떠나게 돼 아쉽다”고 했고 황 감독은 “제2의 축구인생을 살 것인데 좋은 지도자로 거듭나기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승재 전남 사장을 비롯해 한일 월드컵 동지인 김병지, 최진철 등 은퇴식을 찾은 선배들로부터도 꽃다발을 받았다.

마이크를 잡은 현영민은 “두 발로 서서 (그라운드를)나갈 수 있게 해준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한 부모님께 감사하다. 또 묵묵히 내 편이 돼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고 평생 사랑할 것을 약속한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날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그는 “(은퇴식 때)부모님이 가장 가까이 보이더라. 그래서 눈물이 났다. 설마 아내도 울겠나 싶었는데 먼저 옆에서 울고 있었다”고 멋쩍게 웃었다.

3년 전 “등번호에 내 나이가 적힌 건 아니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말했던 현영민이다. 그는 매 시즌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었다. 전남에서 팀 동료로 지낸 김병지가 철저한 자기 관리로 그의 본보기가 됐다. 그러나 ‘1년 더 하지 못한 게 아쉽겠다’는 말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충분히 오래했고 가진 것 이상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 황혼기에 늘 속으로 ‘공부하는 지도자’를 꿈꿨다.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축구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꺼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습관이 된 훈련일지 노트 작성은 선수 생활이 끝날 때까지 거르지 않았다. 훈련과 경기가 끝난 뒤 상대 전술 분석, 우리가 어떻게 대비했는지가 꼼꼼하게 적혀 있다. 여러 감독 지도방식이나 철학 등이 담긴 기사도 스크랩했다. 외국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축구 뿐 아니라 야구의 김성근 감독 등 타 종목 지도자의 생각 등도 정리해왔다. ‘선수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적은 내용이 무엇이냐’는 말에 “평소처럼 우리 훈련 형태나 경기 준비 과정을 적었다”며 “늘 지도자를 염두에 두고 기록해왔다. 내가 꿈꾸는 밑그림은 너무나 많다. 기본적으로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소통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웃었다. 지도자 B라이센스를 보유한 그는 올해 A라이센스를 취득할 계획이다.

지도자로 나서기 전 그는 최근 한 방송사로부터 축구해설위원 제안을 받았다. 올시즌엔 현장에서 목소리로 팬들을 찾아가게 됐다. 선수 때와 다르게 양 팀을 고르게 살피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지도자를 목표로 둔 현영민에게 좋은 경험이다. 그는 “선수와 심판, 지도자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해설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