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권준영기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3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한길 만을 판 배우 천호진. 최근 종영한 KBS2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잔뼈 굵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천호진은 지난 2012년 '내 딸 서영이'에 이어 '황금빛 내 인생'으로 자식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세밀한 감정선을 녹여내 새로운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했다.


천호진은 '내 딸 서영이'에서는 아버지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자신 때문에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딸이기에 자신을 원망하고 외면하는 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큰 울림을 줬다.


지난 11일 종영한 '황금빛 내 인생'에서는 안방극장을 울린 완벽한 부성애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고 아버지인 시청자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천호진은 '황금빛 내 인생'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는데 큰 몫을 했다. 거기에다 탄탄한 무게감을 선사하며 '국민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배역을 위해 점심을 거르면서 촬영할 만큼 몰입한 천호진은 비록 극중 연기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드라마를 관통하는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또 캐릭터와 혼연일체된 모습과 함께 선 굵은 감정 연기를 보여줘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가족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때의 절망감, 다시 살아보려고 한순간 절망처럼 다가온 암 진단을 받고 흘린 눈물, 특히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희생하는 가슴 찡한 부성애는 시청자들 마음에 깊이 각인됐다.


막장 요소(?)가 더해지면서 적지 않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가족을 위하는 가장, 자식들을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천호진이 있어서 시청자들은 보는 내내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방송 내내 큰 관심을 받으며 달려나간 '황금빛 내 인생'은 지난 1월 상상암으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주춤했다. 2월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중계에 따른 편성 변경 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궁금증과 사랑은 끝까지 이어지면서 마지막 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아름답게 매듭지었다.


지난해 말 '2017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천호진의 수상 소감 역시 시청자들에 진한 감동을 줬다.


시상대에 올라 담담한 표정으로 말문을 연 천호진은 "아직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이 상을 받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아서, 이 상은 세상 모든 부모님께 드리겠다"는 말로 벅찬 소회를 털어놨다.


이어 아내를 언급했다. 그는 "진심으로 (이 상을) 전해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여보, 연애할 때 한 약속지키는데 34년 걸렸다. 너무 늦었다. 너무 미안해"라며 "당신만 허락하면 다음 생애 다시 한 번 당신과 살아보고 싶다"고 로맨틱한 고백을 전해 시청자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1983년 MBC 1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소시민부터 악인까지 폭넓은 연기를 선보여 온 천호진은 데뷔 34년 만의 연기대상으로 자신의 전성기는 과거의 어느 순간이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입증했다.


드라마 '가시나무 꽃', '애정만만세', 영화 '베테랑' 등 수십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깊은 연기 내공을 선보였다.


천호진의 부친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살아있는 전설 천규덕이다. 천규덕은 '당수의 달인'으로 불리며 '박치기왕' 김일, '드롭킥의 명수' 장영철과 함께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프로레슬러다.


그는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한국의 1세대 프로레슬러다. 1963년부터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며 1978년 극동 태그매치 챔피언, 1975년 한국 프로레슬링 헤비급 챔피언 등을 지냈다.


아버지로부터 강인한 신체를 이어받은 천호진은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했다. 태권도는 사범을 할 수 있는 공인 4단이고 유도 역시 3단으로 수준급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천호진의 투기 종목 기량은 1990~1998년 장기 출연한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로 드러났다. 농촌드라마이지만 천호진이 싸우는 장면은 어지간한 영화나 드라마속 액션 장면보다 더 낫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 연기로 1992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신인상을 탔다.


뛰어난 연기력은 물론 가슴 깊은 울림을 끌어내는 짙은 감정 표현으로 매 작품 시청자 및 관객을 사로잡는 천호진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국민 배우', '국민 아빠'이자 후배들의 대표적인 롤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천호진이 데뷔 34년 만에 대상을 거머쥐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연기에 대한 거듭된 갈망과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뜨거운 열정은 후배 배우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안방극장을 울린 천호진이 향후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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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스포츠서울 DB, KBS2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