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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혁이 코리언 탑 팀 체육관에서 플라잉 니킥 연습을 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이주상 선임기자]

지난달 31일 청주 충청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TFC 드림5’ 메인이벤트인 한일전에서 ‘탈북 파이터’ 장정혁(20)이 4승 무패의 전적을 가진 일본의 10대 천재 파이터 니시카와 야마토(17)에게 역전 KO승을 거뒀다.

니시카와는 일본의 격투기 단체인 PFC의 현역챔피언으로 ‘미래의 UFC 챔피언’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일본의 특급파이터다. 전문가들은 73%의 우위를 점치며 니시카와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측했다. 하지만 장정혁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1라운드에서 KO승을 거두는 이변을 낳았다. 그동안 장정혁이 라이트급의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니시카가 워낙 강한 상대라는 점에서 깜짝 놀랄만한 승리였다. 장정혁은 “스핀 백에 맞고 다리가 풀렸는데 속으로 ‘여기서 지면 끝이다. 내 뒤에 북한 군인이 쫓아오고 있다. 잡히면 어머니가 또 감옥에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는데 그것이 역전 KO승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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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혁이 샌드백을 치며 훈련을 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탈북청년

‘그것은 밝힐 수가 없다’, ‘자세히 쓰면 안된다’…스물 살 청년은 걱정이 많았다. 지난 2015년 남한 땅을 밟은 장정혁은 기자의 궁금증에 속 시원히 답을 내놓지 않았다. 고향에 두고 온 친척들과 친구들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점조차 미루어 짐작해야 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이 고향인 장정혁은 지난 2009년 살을 에는 추위가 엄습한 11월에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두만강을 건넜다. 장정혁은 “12살까지 북한에서 살았다. 어디서 살았는지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소학교 4학년을 마친 후 6년 과정의 중학교에 다니다 2학년 때 두만강을 건넜다. 11월의 두만강은 너무 추웠다. 도강한 사람들 다수가 동상에 걸렸다. 옷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다행히 나와 어머니는 큰 부상없이 중국 땅을 밟았다”고 돌이켰다. 그가 중국행을 결심한 것은 배고픔 때문이었다. 장정혁은 “온성은 오지인데다 낙후된 곳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게 생활했다. 중국으로 가면 배고픔을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 탈북소년에서 파이터로

목숨을 건 탈북이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12살에 탈북에 성공한 장정혁은 중국 동북부에 위치한 요령성에 어머니와 함께 터를 잡았다. 중국어를 배우는 등 환경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지만 탈북의 꼬리는 장정혁의 자유를 차단시켰다. 중국 공안에 잡힐 까 두려워 집 밖으로 제대로 나다닐 수가 없었다. 장정혁은 “중국에 오면 바라던 삶을 살 수 있을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의 무시와 차별이 심했다. 결국 어머니가 다시 한번 탈출을 결심하셨다”고 했다. 이번에는 태국행이었다. 브로커를 통해 어렵사리 탈출에 성공했지만 불법체류자로 붙잡혀 감옥신세를 져야 했다. 장정혁은 “살인범들과 한 달 동안 감옥에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매일 잠을 못 잤다. 풀려난 뒤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5년 동안의 중국 생활은 그를 격투기 세계로 안내했다. 장정혁은 “원래 운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의 무시와 차별로부터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파이터라는 운명을 안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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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 장정혁. 챔피언과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새로운 터전에 자리잡다

장정혁에게 초기의 남한 생활은 힘든 과정이었다. 버스와 지하철 노선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종점까지 부지기수로 왔다 갔다 했을 정도였다. 장정혁은 “살아온 환경이 달라 처음에는 문화충격이 컸다. 외국인,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남북이 70년을 떨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이질감이 심했다. 지금도 배워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중국에서 배운 것이 운동이었기 때문에 장정혁의 남한 생활의 첫 단초도 운동이었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남한 생활에 빠르게 동화되는 방법이기도 했다. 선수로 생활하려면 중고교 과정을 밟아야 해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 기쁨도 누렸다.

◇ 파이터 장정혁

격투기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게 된 것은 2년 전 우연히 친구와 함께 코리언 탑 팀을 찾게 되면서부터였다. 전찬열 감독의 눈에 띄면서 파이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전 감독은 종합격투기 단체 TFC의 감독으로 ‘코리언 좀비’ 정찬성 등 수많은 TFC 소속 선수들을 세계최고의 격투기 단체인 UFC에 진출시킨 주역이다. 장정혁은 “전 감독의 눈에 띈 것이 파이터로서 거듭난 계기였다. 운동을 독하게 열심히 했지만 기본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즈음에 감독님을 만나게 됐다. 파이터로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장정혁은 기본기부터 다지며 착실하게 자신을 만들어 나갔다. 25전의 아마추어 전적은 프로로 향하는데 큰 자산이 됐다.

장정혁의 닉네임은 ‘야생마’다. 그의 거친 경기스타일을 보고 전 감독이 붙여준 것이다. 장정혁은 “타격을 선호해 킥복싱과 무에타이를 좋아한다. 저돌성 때문에 야생마라는 애칭이 생겼다. 하지만 그래플링도 중요하기 때문에 주짓수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형들한테 맞아가면서 배우고 있지만 굉장히 즐겁다. 정찬성, 최두호, 김동현 같은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5월 25일에 ‘TFC 18’ 대회에 출전한다. 강적 니시카와를 물리쳤지만 자만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같은 급의 선수들은 모두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케이지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쏟아 부을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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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혁이 코리언 탑 팀 체육관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장정혁의 행복

장정혁은 경기도 용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16평의 단출한 임대아파트가 모자의 보금자리다. 건강이 나빠진 어머니를 위해 장정혁은 자신의 취미인 기타연주를 들려주며 어머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그린 나훈아의 곡 ‘홍시’를 연주하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는 효자다. 니시카와와의 경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 가자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엉엉 울었다. TV를 켜놓고 있었지만 차마 아들의 경기를 볼 수가 없었다. 경기가 끝난 후 결과를 보고 자랑스런 아들을 떠 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도 격려보다는 “이제 운동은 그만 하면 안되겠냐”며 걱정만 했단다. 장정혁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해서 챔피언도 되고 싶다. 하지만 어머니랑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꿈이다. 그이상 그이하도 없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두 번이나 목숨을 걸었다. 어머니 옆에서 언제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장정혁이 좋아하는 색깔은 하늘색이다. 푸른 하늘을 보면 절로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장정혁은 “최근 남북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보면 통일에 대한 상상도 하게 된다. 하루 빨리 통일이 돼서 고향에 가 친척들과 친구들을 보고 싶다. 빨리 통일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또 다른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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