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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토프에서 성업 중인 한식당은 이 곳의 고려인 역사를 반영한다. 로스토프 나도누 | 김현기기자

[로스토프 나도누=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한국이 멕시코와 러시아 월드컵 2차전을 치르는 로스토프 나도누는 러시아 남부에 있는 농업도시다. 로스토프에 와보니 날씨가 지금 한국의 여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월드컵을 위해 새로 지었다는 플라토프 공항 청사를 나가자마자 덥고 습한 바람이 확 불어오는 것이 그랬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니즈니노브고로드와 달리 오후 9시가 되면 해가 지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다.

또 하나, 로스토프에 있는 한식당도 그렇다. 이 도시엔 ‘신라’란 이름을 가진 한식당이 시내 중심가에 하나, 그리고 약간 외곽인 취재진 숙소 근처에 하나 있다. 낡은 옛 도시 분위기가 나는 로스토프에서 꽤 좋은 시설과 시원한 냉방 시설이 구비된 최고급 레스토랑이다. 간판엔 한글로 ‘신라’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식당에 들어가니 육개장, 김치찌개, 비빔밥, 삽겹살 등 한식 메뉴가 즐비하다. 거기에 일본 음식과 이탈리아 음식을 판다. 찌개 종류는 한국의 것과 조금 다르지만 국물이 없는 요리, 삼겹살이나 비빔밥은 거의 80~90%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뉴판은 러시아어로 돼 있지만 종업원이 ‘반찬’이란 단어를 뚜렷하게 구사하며 비워진 반찬을 채운다.

이 음식점의 주인은 한국인이 아닌 고려인이다. 신라를 소개한 이유는 고려인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1300㎞나 남쪽에 있는 곳에 정착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제 치하를 피해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은 1950년데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 등 척박한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의 거주 이전 자유가 허락되면서 적지 않은 조선인, 지금의 고려인들이 돈강이 흘러 땅이 비옥하고 농업이 발달한 이 곳, 로스토프에 오게 된 것이다. 지금도 로스토프에 살고 있는 고려인이 2만여명을 넘는다고 한다. 음식점 신라는 고려인의 이런 질곡의 역사를 반영한 곳으로 볼 수 있다. 우량기업 셀트리온이 지난 2009년 일찌감치 로스토프에 진출, 해외 농업 사업으로 하고 있다. 한국문화원도 있어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고려인의 고생 덕에 취재진과 한국 관광객이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곳에서 밥을 먹고 힘내는 중이다.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러시아 사람이 만들어 내놨던 ‘엉터리 한식’은 적어도 여기에 없다. 신태용호 태극전사들이 로스토프에서 시원한 승리로 한민족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