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긴장한 표정의 박항서 감독
‘2018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4강전 한국-베트남의 경기가 29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18. 8. 29.보고르(인도네시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국내에서는 내리막길에 있던 지도자였다. 그러나 베트남으로 건너가 지도자로 정점을 찍고 있다.

최근 국내 축구계에서는 베테랑 지도자를 보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최강희 감독의 톈진 취안젠 이적으로 60대 사령탑이 자취를 감췄다. 최고령인 최순호 포항 감독은 1962년생으로 우리나이 58세다. 경남의 돌풍을 이끈 김종부 감독이 54세로 두 사람 외에는 40대 감독이 주를 이룬다. 과거와 비교하면 경험 많은 지도자를 보기 어렵다.

K리그 팀들이 젊은 지도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나이 많은 감독에 비해 소통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독이 전권을 휘두르던 시기는 지났다. 사무국과 감독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한 시대다. 사무국에선 상대적으로 마음이 열려 있는 어린 감독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함께 일하기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고압적이고 독단적인 나이 많은 감독보다 유연하고 대화가 통하는 젊은 지도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더, 바로 몸값이다. 지도자도 결국 경력이 쌓이면 연봉이 올라간다. 40대 젊은 감독의 경우 베테랑 감독과 비교하면 몸값이 싸다. 예산이 빠듯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 놓인 K리그 팀에게 임금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러나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감독들이 득세하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경험이 전부는 아니지만, 베테랑이 주는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박 감독만 봐도 그렇다. 박 감독은 2015년 상주 사령탑에서 내려온 후 프로에 진입하지 못했다. 1년을 쉬었고 이후 실업리그인 창원시청을 이끌다 베트남으로 떠났다. 이미 전성기가 지난 지도자였지만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에서 신화를 썼다. 박 감독이 높이 평가받는 리더십, 팀 운영 능력 등은 모두 경험에서 비롯된다.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이끈 김학범 23세 이하 감독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2016년 성남에서 중도 하차하고 지난해 강등 위기에 처한 광주 소방수로 부임했으나 잔류에 실패했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처럼 보였으나 아시안게임에서 40년 만의 첫 원정 금메달을 견인하며 부활했다. 베테랑 감독의 필요성은 분명 존재한다. K리그도 다양한 연령대의 감독이 있으면 다양성 면에서 흥미를 끌 수 있다. 경기 철학이나 내용에서도 재미를 발견할 여지가 있다. 프리미어리그만 봐도 마누엘 펠레그리니(65·웨스트햄), 라파엘 베니테스(58·뉴캐슬),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7·풀럼) 같은 베테랑 감독들이 가치를 인정 받으며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베테랑 지도자들은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박 감독은 베트남 부임 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한다. 코치들에게 “내가 모르는 것을 가져오라”고 주문하고 스스로도 해법을 찾기 위해 밤을 지샌다.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팀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베트남의 경우 한국과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훈련과 경기 운영, 선수단 관리 등 전체에 걸쳐 변화를 주는 게 불가피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박 감독은 자신만의 방법을 고집하기 않고 유연하게 사고하며 변화를 줬다. 이영진 코치도 마찬가지다. 1963년생인 그는 K리그에서 감독까지 한 인물이지만 코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칫 도박이 될 수 있는 변방에서의 도전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국내의 나이 많은 감독들도 과거만을 답습해 정체되지 않아야 한다.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트렌드를 읽고 팀과 선수가 원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택을 받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만들 수 있다. 박항서 현상에서 발견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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