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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팬이 지난 15일 스즈키컵 결승을 앞두고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기, 태극기가 함꼐 그려진 대형 깃발을 흔들고 있다. 하노이 | 정다워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홈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인사했다. 이제 스즈키컵 신화를 아시안컵 기적으로 만들 차례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A매치 무패 기록을 17경기로 늘리며 중동으로 떠난다. 베트남을 넘어 동남아 축구의 자존심을 걸고 싸우게 됐다.

베트남은 25일 수도 하노이의 미딩 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 A매치에서 후반 10분 응우옌 콩프엉의 침투패스를 받은 응우옌 티엔링이 선제골을 터트렸으나 후반 36분 상대 간판 공격수 정일관에 프리킥 골을 내줘 1-1로 비겼다. 미딩 경기장은 지난 15일 열린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이 말레이시아를 1-0으로 누르며 10년 만에 이 대회 우승컵을 높이 들어올린 바로 그 장소다. 베트남 대표팀은 이후 잠깐 쉰 뒤 내달 5일 중동 UAE에서 개막하는 아시안컵을 위해 재소집됐다. 4만 관중이 운집한 출정식에서 북한에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 비겨 더 큰 무대에서의 파란을 꿈꿀 수 있게 됐다.

베트남이 이날 1.5군으로 나섰기 때문에 아시안컵에 대한 기대는 더 커졌다. 박 감독은 북한전에서 스즈키컵 주축 멤버들을 대거 제외하고 휴식을 줬다. 말레이시아전에서 신들린 듯한 선방 행진을 펼친 러시아 혼혈 골키퍼 당반럼을 비롯해 스즈키컵 MVP인 테크니션 응우옌꽝하이, 주전 공격수 판반득 등이 대표적이다. 대신 최근 후보로 밀린 K리그 출신 르엉쑤언쯔엉, 조커로 곧잘 나서는 응우옌 티엔링 등이 출전했다. 그럼에도 베트남은 박광룡, 정일관, 리명국(골키퍼) 등 정예 멤버들을 투입한 북한을 상대로 선전했다. 북한은 최근 홍콩에 밀려 내년 동아시안컵 본선행이 좌절되는 등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나 월드컵 본선에도 두 차례나 나서는 등 역사적으론 베트남보다 월등한 축구 실력을 갖고 있다.

베트남은 이날 무승부를 합쳐 최근 A매치 17경기 무패(8승9무)를 달리게 됐다. 지난 2016년 12월3일 스즈키컵에서 인도네시아에 1-2로 진 것이 마지막 패배다. 나흘 뒤 홈 리턴매치에서 2-2 무승부를 거둔 베트남은 지난 해 아시안컵 예선을 포함한 6번의 평가전에서 2승4무를 기록했다. 이어 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치른 올해 A매치에서 6승4무로 질주했다. 동남아 팀들이 겨루는 스즈키컵에서는 6승2무를 기록했다. 중동의 복병 요르단과 벌인 지난 3월 아시안컵 예선 홈 경기에서 비기고 북한과도 무승부를 기록하며 동남아 외의 팀들과 경기에서도 가능성을 보였다.

베트남은 27일 전훈지 카타르로 떠나 중동의 시차와 기후에 적응한다. 이후 결전지 UAE에 입성한다. 카타르에선 스즈키컵 준결승에서 모두 이겼던 필리핀과 최종 리허설을 벌인다. 그리고 운명의 아시안컵 첫 경기가 벌어진다. 바로 새해 1월8일 UAE 아부다비에서 지난 대회 4강 진출팀 이라크와 아시안컵 D조 첫 경기를 벌인다. 이라크가 베트남보다 한 수 위의 팀인 것은 확실하다. 2007년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한 이라크는 4년 전 호주 대회에서도 8강에서 이란을 승부차기 끝에 누르고 4강을 달성했다. 언제든지 아시안컵 8강 안팎에 들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 지난 여름 연령별 대표팀 선수들의 나이 조작 파문에 이라크 축구계 전체가 휘청거렸으나 국가대표팀은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4일 카타르에서 열린 중국과 비공개 평가전에서도 2-1로 이겼다.

그러나 베트남의 상승세가 만만치 않아 두 팀의 경기는 아시안컵 초반 최대 빅매치가 될 전망이다. 박 감독이 1년간 꾸준히 조련한 베트남은 젊은 선수들이 이뤄내는 조직력과 파이팅이 대단하다. 북한전에서는 후보급 선수들이 상당수 출전해 패스워크 등에서 문제가 있었다. 주전이 총동원되는 이라크전에선 한층 업그레이드된 경기력이 기대된다. 지난 1월 중국 23세 이하(U-23) 아시아선수권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긴 것도 큰 힘이다. 비록 연령별 대회지만 현 베트남 대표팀 선수들 상당수가 당시 U-23 대표로 뛰었기 때문에 중동 축구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벗어던질 수 있게 됐다. D조엔 두 팀 외에 우승후보 중 하나인 이란, 첫 출전국 예멘이 함께 속해 있다. 베트남-이라크전이 사실상 D조 2위를 결정하는 경기나 다름 없다.

심리적 부담이 덜하다는 점은 베트남의 이변을 예상하게 하는 또 다른 변수다. 사실 베트남에선 스즈키컵이나 ‘동남아시아의 올림픽’인 SEA게임 성적이 관심을 모을 뿐 아시안컵에 대한 집중도는 살짝 떨어져 있다. 베트남이 2007년 이 대회 8강에 올랐을 때도 열기가 폭발적이진 않았다. 박 감독도 16강에만 진출해도 성공적이라는 견해를 내비친 적이 있다. 엄청난 중압감 아래서 치른 스즈키컵을 우승으로 끝냈다. 그래서 아시안컵은 베트남 축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대회로 간주할 수 있다. 특히 첫 판 이라크전이 하이라이트다.

silva@sportsseoul.com

◇베트남 대표팀 아시안컵 조별리그 일정

1월8일 오후 10시30분 베트남-이라크

1월12일 오후 8시 베트남-이란

1월17일 오전 1시 베트남-예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