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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공격은 아쉬웠지만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시도하는 상대를 만나 무실점을 거둔 것은 나름의 소득이다.
축구대표팀은 파울루 벤투 감독 부임 후 전력이 탄탄한 팀들을 주로 상대했다. 코스타리카나 칠레, 우루과이 등은 강팀이었다. 아시아권의 호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시 한국을 상대로 마냥 수비만 한 팀들은 아니었다. 물러서지 않고 정면에서 싸웠다.
7일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만난 필리핀은 지금까지 ‘벤투호’가 상대한 팀들과는 전혀 달랐다. 5-4-1 포메이션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나와 일단 실점하지 않는 데 집중했다. 라인을 내리고 필드 플레이어 대부분이 페널티박스 근처에 밀집해 한국의 공격을 봉쇄했다. 골문 앞 ‘버스 2대’로 인해 한국 공격수들은 공간을 창출하지 못하고 득점 기회를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벤투 감독도 “상대는 자기진영에서 수비라인을 내려서서 쌓아놓고 경기를 했다. 공간 창출과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수비에도 작은 균열이 갔다. 필리핀은 원래 역습이 좋은 팀이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속도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무시할 수 없다. 이날 경기에서도 공격수 2~3명이 최소 인원으로 한국 뒷공간을 적절하게 공략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몇 차례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수비진의 대처가 완벽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용과 김진수, 정우영 등 3명이나 옐로카드를 받은 부분도 아쉽다.
고전한 것은 아쉽지만 무실점은 소기의 성과다. 필리핀은 벤투호가 처음 만나는 유형의 팀이었다. 두 팀의 전력 차가 있다 해도 역습을 시도하는 팀의 공격수를 소수의 수비수가 완벽하게 방어하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필리핀의 전략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으나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경기에 나서는 것은 천지차이다. 선수들 처지에선 낯선 패턴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게 분명하다. 이날 경기를 통해 선수들은 극단적인 선수비 후역습을 구사하는 팀을 만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공부했다.
토너먼트 라운드 상위로 가기 전까지는 이러한 패턴의 경기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2차전에서 만나는 키르기스스탄이나 3차전 상대 중국, 그리고 16강에서 만날 팀은 이변이 없는 한 필리핀처럼 경기를 운영할 것이다. 한국을 상대로 맞불을 놓으면 밀릴 게 뻔하기 때문에 일단 실점하지 않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간헐적인 역습으로 골을 노리는 계획을 들고 나올 전망이다. 필리핀전 경험은 남은 일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필리핀전을 통해 벤투호는 최근 A매치 3경기 연속 골을 내주지 않는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을 만나서는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비진은 자신감을 갖고 남은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됐다. 김영권과 김민재를 중심으로 하는 수비 라인 조직력이 더 살아나면 경기력이 더 올라갈 확률이 높다. 이제 막 1차전이 끝난 만큼 부족한 점은 정비하고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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