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최동원
롯데 최동원과 해태 선동열이 선발 맞대결을 앞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이환범선임기자] ‘최동원 -선동열 세기의 대결은 3번이 아니라 4번?’

KBO리그 출범 이후 최고의 라이벌로 고 최동원과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꼽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서 4승을 거두며 롯데에 첫 우승트로피를 안겨준 최동원과 꿈의 0점대 방어율을 세 번이나 기록하며 무등산폭격기로 이름을 날린 선동열은 최고투수 자리를 놓고 열띤 경쟁을 펼쳤다. 영호남의 스타로 경남고와 광주일고, 연세대-고려대, 그리고 롯데-해태로 이어지는 학연-지연 라이벌 구도까지 더해져 선수로 뛰던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까지도 ‘누가 역대 최고투수냐’를 놓고 끊임 없는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이 세기의 맞대결을 펼친 것은 통산 3차례로 알려져 있다. 맞대결 결과에서도 1승1무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한 번씩 완봉승을 거두며 장군멍군을 불렀고 세 번째 대결에서는 무승부를 기록하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1986년 4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첫 대결에서는 1-0 선동열의 완봉승으로 경기가 끝났다. 두 번째 대결은 같은 해 8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최동원이 2-0 완봉승을 기록하며 1차전 패배를 깔끔하게 설욕했다. 마지막 대결은 1987년 5월 16일 사직구장에서 펼쳐졌는데 연장 15회 4시간 54분 혈투끝에 2-2 무승부로 끝났다. 15이닝 동안 최동원이 209개,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했다. ‘먼저 내려가는 쪽이 지는 것’이라는 처절한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어느 쪽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해태 선동열스포츠서울 DB

그런데 ‘숨어 있는 맞대결’이 한 차례 더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선 전 감독은 21일 서울대에서 열린 야구학회 여름학술발표대회에서 자신의 야구인생과 지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비사를 공개했다. 선 전 감독은 “1987년 4월에 맞대결을 해서 6-2로 이긴 적이 있었다”며 그 과정을 설명했다. 선 전 감독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당시 해태 김응룡 감독이 유남호 투수코치에게 ‘내일 선발이 누구야’라고 물었고 ‘정해지지 않았는데 선동열이 제일 많이 쉬었다’고 하자 ‘내일 최동원인데 너 한 번 던져볼래?’라고 말씀하셨고 ‘네’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날 선발로 김대현이 먼저 출전해 한 타자를 잡은 뒤 내가 마운드에 올라 8.2이닝을 던졌다”고 회고했다.

32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니 기억이 정확할 수는 없다. 유남호 코치는 당시 청보 핀토스 투수코치로 있었고 해태 투수코치는 임신근이었다. 해태가 바람잡이 선발을 동원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선발예고제가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었던 권유사항이었는데 리그 최강을 달리던 해태가 비교적 선발예고를 잘 지키는 편이었다. 그런데 바로 직전경기에 좌완 김정수를 선발로 예고했다가 롯데의 타순조정 노림수에 걸려 0-11로 대패하고 말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람잡이 선발 뒤에 선동열을 투입해 앙갚음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동원
야구선수 최동원(롯데)잠실구장1987년 7월 18일

사실 최동원과 선동열의 대결은 총 5차례 있었다. 그 중 3번이 선발 맞대결이었고 나머지 두 번은 최동원은 선발, 선동열은 구원투수로 등판해 대결을 펼쳤다. 1985년 7월 31일 부산경기에서 선동열은 선발 강만식의 뒤를 이어 3회 구원 등판해 5.2이닝 1실점을 기록했고, 최동원은 9이닝 2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또 한 번의 대결이 바로 1987년 4월 12일 경기다. 바람잡이 선발 김대현에 이어 1회 1사후 마운드에 오른 선동열은 8.2이닝 동안 157개의 공을 던져 2실점 승리투수가 됐다. 최동원은 4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했지만 5회 3점, 6회 3점을 내주고 6이닝 6실점 패전투수가 됐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을 얘기할 때는 보통 선발 맞대결 3번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세기의 라이벌답게 동일한 조건에서 성립된 대결만 인정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1987년 4월 12일 경기도 선 전 감독 입장에서는 선발 맞대결이나 다름 없었다. 다만 이전까지 선 전 감독이나 고 최동원, 어느 누구도 선발 맞대결 이외의 대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형평성이 어긋나는 대결을 입에 담는 것조차 두 사람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 전 감독은 “당시는 동원이형이 나의 롤모델이었고 형을 따라갈 때라 맞대결을 해서 지더라도 내 입장에선 ‘밑져야 본전’이었다. 하지만 형은 부담이 많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최 전 코치는 2011년 대장암으로 작고했고 세기의 라이벌 대결은 모두 아련한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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