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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정현(23·한국체대)이 재기의 신호탄을 쏘았다. 무뎌졌던 포어핸드가 살아난 게 가장 큰 힘이다. 정현(170위)은 28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오픈 이틀째 남자 단식 1회전에서 어네스토 에스커베이도(206위·미국)에게 3-2(3-6 6-4 6-7<5-7> 6-4 6-2)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예선 3경기를 거쳐 통과한 1회전인 만큼 기쁨은 더욱 컸다.
3시간 36분 동안 이어진 마라톤 접전. 2019호주오픈에 이어 7개월만의 메이저대회 승리를 거머쥔 정현은 경기내내 힘찬 응원으로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 한국 팬을 향해 고개숙여 인사하며 즐거워했다. 정현은 “멀리서 온 한국 팬의 응원이 정말로 큰 힘이 됐다. 공백기를 잘 이겨낸 것 같다. 지금 코트에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즐겁다”며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현의 2회전 상대는 36살의 베테랑 베르다스코(스페인·34위)다. 2015년 클레이코트 대회에서 한 차례 만나 정현이 0-2로 패했다. 정현은 “베르다스코는 기량이 뛰어나고 까다롭다. 도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겠다”고 승부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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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한 몸 상태
정현의 슬럼프는 부상에서 비롯됐다. 지난 2월 ATP 투어 ABN 암로 월드 챔피언십 이후 허리 부상으로 개점휴업에 빠졌다가 무려 5달만인 지난달 말 중국 청두챌린저를 통해 복귀했다. 결국 정현의 재기여부는 허리상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날 경기력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몸 상태는 괜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좌우 밸런스와 빠른 푸트워크가 살아났고 무엇보다 급격한 방향전환 과정에서도 허리에 별 무리를 느끼지 않아 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살아난 포어핸드프로 투어대회에서 한방이 없으면 버텨내기 힘들다. 그동안 정현은 포어핸드 스트로크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허리부상에 따른 중심축의 붕괴가 포어핸드 스트로크를 무디게 한 원인이 됐다. 포어핸드 스트로크 임팩트 시 오른쪽 어깨가 처지면서 왼쪽 발이 일찍 들리는 치명적 약점이 반복됐다. 그 경우 볼을 눌러주지 못해 타구에 힘이 실리지 않게 된다. 포어핸드 스트로크는 정현이 프로 투어에서 버틸 수 있는, 그리고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자신만의 장점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단점을 고치기 보다는 장점을 키우주는 데 주력하고 있는 네빌 고드 윈 코치조차 무뎌진 정현의 포어핸드를 교정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결과 정현은 자신의 포어핸드에 힘을 실어 금이 갔던 대포를 다시 고쳐냈다. 포어핸드가 살아나자 방향 전환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상대의 백핸드 쪽 타구를 돌아서 포어핸드로 공략하는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도 이날 경기 후반 자주 목격됐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서브많이 고쳤지만 아직도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게 바로 서브다. 워낙 서브 메커니즘이 좋지 않았던 정현이었던 만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서브 동작 교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퍼스트 서브와 세컨드 서브의 차가 아직도 많이 났다. 무엇보다 팔 동작과 함께 허리가 회전해야 서브에서 파워가 생성되는데 아직 팔로만 볼을 때리는 약점을 고치지 못했다. 코일이 꼬였다가 풀리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듯 허리축이 회전하면서 그 탄력으로 서브를 때리는 교정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정현은 아직도 서브의 진면목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래야 서브의 위력이 배가되며 그에 따라 제 3,5구에서 승부를 결정내는 경제적인 테니스를 구사할 수 있다.
◇베이스 라이너에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로 변신해야정현은 여전히 공격적인 플레이보다 베이스 라인에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지키는 플레이에 익숙해 있다. 이날 경기 초반 정현은 자신의 장점인 디펜스에서 잦은 실수를 범해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경기 후반 리턴이 살아나면서 꿈 같은 역전승을 따낼 수 있었다. 베이스 라이너는 자신의 경기 결정력이 떨어지질 수밖에 없다. 베이스 라이너는 상대의 실수에 편승하는 ‘버티는 테니스’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현대 스포츠는 공격적인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공격적인 색깔을 입힐 수 있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로 변신하는 게 정현에게 주어진 또다른 숙제다. 강력한 서브에 이은 제 3구, 제 5구에서 경기를 결정내는 공격적인 플레이는 지금과 같이 베이스 라이너로선 한계가 있다. 조만간 자신감이 쌓이면 네트를 더욱 많이 점령하는 것은 물론 강약을 조절하면서 상대를 밀었다가 끌어들이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빈 공간을 창출하고 거기에 볼을 때릴 수 있는 게 바로 가장 경제적인 테니스다. 현대 테니스의 적자인 올라운드 플레이가 바로 정현이 추구해야하는 바람직한 상(像)이다. 그래야만 적자생존의 냉정한 정글에서 쉽게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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