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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과 키움의 한국시리즈(KS) 1차전이 열린 22일 잠실구장 1층 기록실에서 이주헌, 윤치원 KBO 기록위원이 2회 키움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오르자 ‘경기 스피드업 규정’에 따라 횟수를 들어올리고 있다. 잠실 | 김용일기자

[잠실=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두산과 키움의 한국시리즈(KS) 1차전이 열린 22일 잠실구장. 살 떨리는 승부가 펼쳐지는 그라운드 외에 또 다른 전쟁터가 있으니 백스톱 뒤쪽 3평 남짓한 기록실이다. 야구 기록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26년 차’ 이주헌, ‘18년 차’ 윤치원 KBO(한국야구위원회) 기록위원은 이날도 타구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육성으로 주고받으며 기록에 집중했다.

야구에서 기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기록원의 판단은 리그 새 역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나 한 시즌 최정상을 가리는 KS 무대에서는 하나의 안타, 홈런은 귀중한 역사로 이어질 수 있는만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본지는 KS 1차전에 기록실을 찾아 기록위원의 숨가쁜 현장을 들여다봤다. KS에는 정규시즌처럼 2명이 배치되지만 큰 경기인만큼 비상시 일을 도울 기록위원 1명이 대기한다. 기록위원은 야구장에 도착하면 노트북 및 각종 장비 설치와 더불어 통신 상태를 점검한다. 그리고 선수, 심판진 명단을 교환하고 최종 명단이 나왔을 때 오차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실제 이날 1회 진행 중 “애초 받은 심판 배정과 다르다”며 두 위원이 KBO 관계자에게 전달해 기록지를 수정하기도 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타석마다 ‘스트라이크, 볼’ 등 볼 판정서부터 ‘좌중간 안타, 우중간 안타, 좌익수 플라이, 우익수 플라이’ 등등 경기 상황을 두 위원이 공유한다. 견해가 일치하면 각각 수기, 전산에 표기한다. 경기 막판 대타, 불펜 투수 등 선수 변화가 잦을 땐 정확한 기록을 위해 위원 1명이 불펜을 바라보며 몸을 푸는 선수를 미리 체크하고 심판진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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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윤치원 KBO 기록위원이 타구를 확인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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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장내 아나운서, 이주헌 윤치원 KBO 기록위원이 스포츠서울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하고 있다.

KS같은 큰 무대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김제원 기록위원장은 “포스트시즌은 관중 함성이 유독 크다. 사람이기 때문에 소음이 있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라며 “잠실구장은 전광판 양쪽에 대형 스피커가 있다. 기록실 쪽으로 소음이 쏠리는 현상이 있어 정신을 놓았다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애매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 역시 숙명과 같다. 이날도 4회 두산 호세 페르난데스가 2사 1,3루에서 좌전 2타점 2루타를 터뜨렸을 때 키움 좌익수 김규민이 슬라이딩을 시도하다가 타구를 빠뜨렸다. 언뜻 좌익수 실책으로도 볼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식 기록은 페르난데스의 안타였다. 윤 위원은 “안타 관련 항목을 보면 ‘야수판단 실수’가 있는데 페르난데스의 타구는 슬라이스가 걸린 상황으로 야수가 낙하지점을 판단하기 어려웠다. 실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록위원은 단순히 기록만 하는 게 아니다. 최상의 경기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1회 초 키움 리드오프 서건창이 타석에 섰을 때 이 위원은 “조도를 낮춰달라”고 외쳤다. 그러자 기록실에서 장내 아나운서이자 전광판 운영을 맡는 유지영 씨가 단번에 알아듣고 처리했다. 이 위원은 “전광판 조명이 너무 밝으면 타자, 포수가 경기에 지장이 있다. 심판이 요청해서 처리했다”고 알렸다. 기록위원은 야구의 숨은 코디네이터와도 같다. 전쟁터 같은 분위기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야구에 집중하는 또 다른 이들의 스토리도 야구장 한쪽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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