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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얼마 전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허리가 아프고, 양쪽 다리가 저려 가까운 거리만 겨우 걸을 수 있는 정도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걷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서는 통증이 점점 더 심해 심해졌다며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MRI 검사를 해보니 허리뼈 4번과 5번에서 척추관협착증이 심한 것으로 진단되었다. 척추관협착증은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인 척추관이 좁아져 신경을 압박하는 질환이다. 이런 경우 좁아진 척추관을 넓혀 압박된 신경을 풀어주는 감압수술로 증상이 호전될 수 있는데, 환자의 나이가 걸렸다. 차트에서 확인한 나이가 78세. 병원 차트는 만 나이로 표시되니, 얼추 우리나라 나이로 팔순 내외였다.
고민 끝에 결국 수술 대신 약물치료를 권해드렸지만 약물치료에 별다른 호전이 없어 주사치료를 시행하였다. 초기에는 주사치료가 효과가 좋았다. 보행거리도 늘어나고, 환자의 만족도도 높았지만 호전의 정도가 오래 가지 않았다. 2~3개월 후에는 주사치료를 해도 길면 일주일, 짧으면 하루 정도 밖에 효과가 없었다. 이후 한두 차례 더 주사치료를 받고 환자분은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았다.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다른 영역에서는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병원에서는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리다. 80세가 넘어도 60대 같은 분이 있는가 하면 60세가 채 안되셨는데도 체력은 80대와 비슷한 분들도 많다. 또 아무리 건강해 보이는 80대 환자분도 검사를 해보면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구나’싶은 분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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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연령이 80세가 넘으면 필자로서는 아무래도 수술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허리 수술은 몇 살까지나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병원을 찾는 환자 역시 고령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다 보니 고민은 더 깊어진다.
생각해보면 수술을 권했을 때 흔쾌히 하겠다고 하는 환자들은 연령 불문하고 없는 듯하다. 20~30대에 디스크가 파열돼 신경압박이 심하여 수술을 권해드리면 너무 젊어서 수술하기 어렵다고 한다. 40~50대 분들은 한참 일을 해야 돼서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60~70대는 더 조심스러워한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인 디스크 제거술이나 신경성형술에도 ‘내 나이에 무슨 허리 수술을 하겠느냐’며 부담스러워한다.
의사도 사람이다 보니 환자들이 필자가 권한 치료방법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를 겪다 보면 나름의 원칙 아닌 원칙을 갖게 된다. 몇 살 이상에서는 이런 치료를 권해주고, 몇 살 즈음의 환자는 저런 치료를 해드리겠다는 식이다. 환자 입장에서 나이, 생활패턴, 직업, 성향에 따라 치료법을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다.
척추수술은 신경을 압박하는 병변을 제거해 주는 수술이 대부분이다. 신경의 상태에 따라서 지금 해야 하는 수술이 있는가 하면 당장 급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한 없이 수술을 미룰 수만도 없는 상태인 경우도 있다. 또 수술을 미루다 보면 전신상태가 나빠져서 수술이 필요할 때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한 모든 변수는 담당 의사만이 알 수 있다.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을 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환자가 너무 놀라지 않게 배려할 필요는 있다. 환자의 현재 상태를 의학적인 지식 없이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설명하고 다양한 치료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첫 번째 치료계획이 환자의 입장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려울 때, 차선의 방법을 제시하고, 차선도 어려울 땐 차차선의 방법이라도 환자분과의 대화를 통해 찾아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환자와 공감하며 최선의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이 의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북힘찬병원 정기호 의무원장(신경외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