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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김민규기자]“잘못은 했지만 징계는 지나쳤다.”
금융감독원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 손 회장은 불복하며 법원의 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가 내린 판결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언뜻 ‘손 회장의 승소’라는 결론만 보면 라임 사태 등으로 인해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은 뒤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는 타 금융사 CEO들이 반길 만한 판결이다. 그러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다. 잘못에 비해 징계 수위가 높다는 것이지 징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손 회장의 중징계를 취소했지만 우리은행의 허울 뿐인 내부통제제도를 신랄하게 지적하면서 금융회사 경영진의 ‘탐욕’을 매섭게 질타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내 금융기관에 내부통제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금융기관이 예금자 등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도외시한 채 그 실적만을 좇거나 경영진이 그 욕망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그 ‘탐욕’에 제동을 걸어 줄 수 있는 실효적인 자율적 내부통제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탐욕’에 제대로 된 규제가 이뤄지지 못한 원인과 관련해 재판부는 “금융기관 규제를 담당하는 고위 관료의 이른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 문제가 그 퇴임 후 취업 문제와 연관돼 사회적 문제로 꾸준히 지적됐다”고 밝혀 퇴직 금융관료를 뜻하는 속칭 ‘모피아’를 통한 결탁 관행을 꼬집었다. 규제 포획이란 규제당국이 규제 대상에게 포섭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또한 재판부는 “(내부통제 미작동에도) 제대로 된 규제가 적시에 실효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못하였거나 사전에 이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형태의 금융감독이 제대로 이뤄져 왔는지에 대하여는 회의적인 시각에서 문제 제기가 계속 있었다”며 “이러한 비판과 궤를 같이하여 현실에서도 실제로 불특정 다수의 금융소비자가 대규모로 피해를 보고 그에 따라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해할 우려까지 생기는 금융사고 역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우리은행이 상품 선정절차에서 투표 결과 조작과 투표지 위조, 형식적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등으로 내부통제 규범과 기준을 위반하고 형해화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재판부는 “원고 손태승은 내부통제기준 작성업무에 대하여도 감독자 지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며 대표이사가 내부통제기준 운영자의 직속 감독자가 아니므로 징계 대상이 아니라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금융회사 내부통제제도의 중요성과 대표이사의 책임성, 우리은행의 부적절한 상품 선정절차를 인정하면서도 손 회장 징계를 취소하라고 주문한 것은 법조문이 징계에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피고의 주장과 같이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실패로 인해 DLF의 불완전판매라는 금융사고와 그로 인한 대량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현행 금융사지배구조법령 아래에서는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의무’ 위반으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하여 제재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제재의 필요성만으로는 법적 근거 없이 혹은 제재처분의 근거법령을 문언의 범위를 벗어나 확장 해석하여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은 추후 금감원의 항소 여부와 후속 조치, 타 금융사 제재에 대한 재판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금융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금감원은 판결문을 세밀하게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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